
매주 충주에서 청주까지 200㎞ 이상을 운전하는 직장인 이모(35)씨는 요즘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방식부터 바꿨다. 급가속·급감속을 줄이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친환경 운전’을 실천 중이다. 고급 휘발유를 일반 휘발유로 바꾸는 것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시민들의 일상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배럴당 107달러…3년 7개월 만의 충격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기준 국제유가는 3월 9일 배럴당 107.54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24년 7월 이후 1년 8개월 만의 최고치다.
국내 휘발유 가격도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 지역 휘발유 가격은 ℓ당 1,900원을 돌파하며 2022년 8월 이후 3년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 2.0% 전망치를 설정할 때 기준으로 삼은 유가는 배럴당 62~64달러였다. 현실은 이미 그 두 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농업 현장은 생존의 기로
고유가의 충격은 시설농업 현장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청주에서 방울토마토 농사를 짓는 이모씨는 올해 미리 확보한 등유 7천ℓ만 사용하고 보일러 추가 가동을 포기했다. 대신 지하수를 비닐 사이로 흘려보내는 ‘수막재배’로 하우스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강원 춘천의 한 딸기 농가는 2배가량 뛴 기름값을 감당하지 못해 올겨울 딸기 농사 자체를 포기했다. 충주의 한 과수원 농민은 “조금이라도 쌀 때 확보하려고 20ℓ짜리 등유 10개를 미리 사뒀다”고 전했다. 전문가들도 시설농업 채산성 악화가 장기화할 경우 국내 농산물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중교통 승객 급증…경제 전반 경고음
자가용을 포기하는 시민도 늘고 있다. 청주시 대중교통 승객 수는 지난달 셋째 주 65만 명에서 이달 둘째 주 104만 명으로 불과 한 달 새 60% 가까이 급증했다. 시 관계자는 “가파르게 오른 기름값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제 전반의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 원유 수입 의존도가 100%로 OECD 37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연평균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경우 성장률이 0.8%포인트 하락하고, 소비자물가는 2.9%포인트 급등하며, 경상수지 감소액은 767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고유가·고환율로 물가가 뛰고 경기는 가라앉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올해 한국 경제를 힘들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UAE에서 원유 600만 배럴을 긴급 수입하고,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음성군 등 지자체도 공무원 대중교통 이용과 탄소중립포인트 제도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중동 사태의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는 한, 고유가의 파고는 시민의 지갑과 농가의 생존, 그리고 국가 경제 전반을 계속 짓누를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