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을 팔면 이틀 뒤에야 계좌에 돈이 들어온다. 수십 년간 당연하게 여겨온 이 구조가 이르면 2027년 10월 바뀔 수 있다. 한국 금융당국과 유관기관이 주식 결제주기를 현행 T+2(거래일 기준 2영업일 후 결제)에서 T+1로 단축하는 방안을 본격 추진하기 시작했다.
한국거래소·한국예탁결제원·금융투자협회 등 유관기관 워킹그룹은 지난달 17일부터 이달 1일까지 미국과 유럽을 방문해 현지 실사를 마쳤다. 이달 중 공개 토론회를 열고 증권사·은행·자산운용사·개인투자자 등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박용진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준비 단위에서는 내년 10월쯤이나 가능하다고 얘기한다”고 밝혔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월 청와대 자본시장 간담회에서 결제주기 단축을 직접 의제로 제시한 이후 논의에 가속이 붙은 결과다.
미국·유럽 잇따라 T+1 전환…글로벌 표준이 된 ‘하루 결제’

미국은 이미 2024년 5월 28일부터 T+1 결제를 전면 도입했다. 미 SEC가 2023년 2월 최종 규정을 채택한 지 약 1년 만의 시행이었으며, 전환 이후 결제 실패율이 급격히 악화되지 않았고 당일 거래확인(Same-day affirmation) 비율은 90% 중반대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과 유럽연합(EU)은 2027년 10월경 T+1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홍콩도 2027년 4분기 도입 계획을 공식화했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간담회에서 “유럽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T+1 결제주기 단축을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한국이 2027년 10월 전후를 목표로 설정한 배경이다.
T+1 전환의 핵심 효과는 결제 리스크 축소와 투자금 회전 속도 개선으로 요약된다. 결제 노출 기간이 이틀에서 하루로 줄면 중앙청산기관(CCP)과 증권사의 담보 부담이 낮아지고, 매도대금이 하루 빨리 계좌에 들어와 재투자 속도도 빨라진다. 중장기적으로는 거래 비용 인하 요인이 될 수 있다.
‘새벽 결제 지시’ 강요하나…외국인·외환 문제가 최대 변수
제도 전환까지 넘어야 할 산은 적지 않다. 코스피 시가총액의 약 30%를 보유하는 외국인 투자자 문제가 핵심 변수로 꼽힌다. T+1이 적용되면 뉴욕·런던 기반 운용사들은 한국 장 마감 후 사실상 자국 시간대 기준 야간에서 새벽 사이에 환전과 결제 지시를 동시에 완료해야 하는 구조가 된다.
자본시장연구원 한아름 선임연구원은 “역외 투자자와 국경 간 거래 참가자는 자금 조달과 환전 시간 축소에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며 “외환 및 증권 결제 간 시차 문제를 독립적인 정책 과제로 설정하고 환전 편의성 제고 방안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2023년 연구용역에서도 “아시아 주요국과 단축 시기를 맞추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을 낸 바 있다.
글로벌 운용사들은 통상 아시아 시장을 하나의 데스크에서 묶어 대응한다. 한국만 먼저 T+1로 이행할 경우 별도 새벽 데스크를 두지 않는 운용사 자금이 일본·대만·홍콩 등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시장에서는 거론된다. 외환 인프라 측면에서는 2026년 7월 원화 외환시장 24시간 운영 확대가 예정돼 있으나, 역외 원화결제 시스템은 2027년 시행 목표로 T+1 전환 시점과 빠듯하게 맞물린다.
시스템 재구축·노조 합의까지…”단기 추진 쉽지 않다”
국내 증권사·은행·자산운용사의 백오피스 시스템과 결제 프로세스도 전면 개편이 불가피하다. T+1 체계에서는 주문·체결·청산·결제 전 과정의 자동화(STP) 비율을 대폭 높여야 하고, 야간 및 새벽 운영 인력 확충도 뒤따른다. 과거 한국거래소의 정규장 시간 연장 추진 당시 금융 노동조합의 강한 반발이 있었던 점에 비춰, T+1 도입 역시 유사한 갈등이 재연될 소지가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결제주기 단축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시스템 개발이나 외국인 투자자 문제를 고려하면 단기간 내 추진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유럽 시행 시기에 맞춰 유관기관 워킹그룹을 통해 제도 정비를 신속히 하겠다”며 “외환 유동성이나 투자자 관행 등도 함께 고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