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지켜드립니다’라더니 “완전히 속았다”… 4조 넘게 털린 서민들 ‘피눈물’

내 돈은 이미 사라졌다
은행 문턱 넘지 못하는 피해자들
AI 기술로 범죄는 더욱 교묘하게

“범인을 잡아도 돈은 이미 사라지고 없어요.” 한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절규처럼, 한번 당하면 되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지난 5년간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액이 무려 4조 원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 15년간의 누적 피해액을 뛰어넘는 충격적인 수치다.

범죄는 날로 지능화되지만, 정작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은행의 배상 책임은 제자리걸음이다.

피해는 눈덩이, 범죄는 AI로 진화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생한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4조 원에 달한다. 2006년부터 2021년까지 15년간의 누적 피해액(3조 8681억 원)을 단 5년 만에 넘어선 것이다.

특히 명절 연휴 기간을 노린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추석 연휴 기간 피해액은 237억 원에서 703억 원으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건당 평균 피해액 역시 487만 원에서 2244만 원으로 4.6배나 뛰었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딥페이크, 딥보이스 기술이 범죄에 악용되면서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10명 중 1명만 구제, 유명무실 ‘자율배상’

피해는 급증하고 있지만, 은행의 문턱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5대 은행에 접수된 보이스피싱 자율배상 신청 173건 중 실제 배상이 이뤄진 것은 단 18건(10.4%)에 불과했다.

배상액 또한 전체 피해 신청 금액 6억 3762만 원 중 22.1%인 1억 4119만 원에 그쳤다.

은행별로는 국민은행 6건, 신한은행 7건, 농협은행 5건 순이었으며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배상 사례가 전무했다. 은행들이 고객의 과실을 엄격하게 따지는 동안 피해자들은 제도적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와 국회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지난 8월, 금융회사의 직접적인 과실이 없더라도 피해액의 일부 또는 전부를 배상하도록 하는 ‘무과실 배상 책임’ 도입을 발표했다.

금융사고 예방 노력에 따라 책임을 차등적으로 부과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인영 의원은 “은행이 고객 과실 여부만 따질 것이 아니라, 피해 예방과 신속한 구제라는 사회적 책무를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의원 역시 “AI 기술 등으로 진화하는 범죄에 대응해 금융기관의 과실 여부와 상관없이 피해자를 구제할 법적 장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범죄 조직의 배만 불리는 보이스피싱 악순환을 끊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