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0억 달러 이상 투자 유도
한국 기업들 “추가 투자 부담 크다”

대미 투자를 앞둔 국내 기업들에 비상등이 들어왔다. 미국이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 이상 투자하면 행정 절차를 간소화해 주겠다는 방침을 내놓으면서 국내 기업들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 신임 미국 상무부 장관은 한국 경제 사절단과 만나 “10억 달러 이상 투자하면 행정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미국 우선주의 투자 정책’과도 연결된다.

러트닉 장관은 “10억 달러 이상 투자하면 전담 직원을 배치하고, 100억 달러 이상이면 추가 혜택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를 사실상의 투자 압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은 이미 2023년 기준 미국 최대 투자국 중 하나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투자액은 215억 달러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우리는 이미 대규모 투자를 했는데, 새 기준을 적용해 추가 투자를 강요하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특히 자동차 업계는 미국의 요구를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조지아주에 76억 달러(약 10조 8000억 원) 규모의 전기차 공장을 건설 중이다.
하지만 이는 바이든 행정부 시절 집행된 투자로,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에서 인정받을지 불확실하다.
철강업계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현대제철은 미국 내 신규 제철소 건설을 검토 중이지만, 추가적인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국, 투자 안 하면 관세 카드 꺼낼까

미국이 10억 달러 투자 기준을 설정하면서, 이를 따르지 않으면 관세 등의 경제적 압박이 가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자동차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으며, 반도체 보조금 정책도 재검토 중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투자하지 않으면 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도 미국과 협상을 통해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르면 이번 주 미국을 방문해 러트닉 장관과 직접 협상할 계획이다.

특히 한국이 이미 미국의 주요 투자국임을 강조하며, 추가 투자 시 현실적인 혜택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정책 변화로 한국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단순한 압박이 아니라 실질적인 협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정부와 기업이 얼마나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낼지가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