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휴지조각 공포 확산
해외주식 매수세 8조 원
역대급 투자 열풍이 지속

환율이 1470원대를 찍으며 원화 가치가 급락하는 상황에서도 개인투자자들의 해외주식 매수세가 11월에도 8조원을 넘어서며 역대급 투자 열풍이 지속되고 있다.
2개월 연속 8조원대 폭풍 매수

2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투자자는 해외 주식을 59억3441만달러(약 8조7253억원) 순매수했다. 이는 10월에 기록한 68억5499만달러(약 10조원)에 이어 2개월 연속 60억달러대 초대형 매수세가 이어진 것이다.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누적 순매수액은 305억8941만달러(약 45조원)로, 지난해 연간 순매수액 105억4500만달러의 2.8배를 넘어섰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매수세가 환율이 가장 불리한 시점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지난달 28일 원·달러 환율은 1470.60원으로 마감했고 장중 1473.00원까지 치솟았다.
고점 환율 구간에서 달러를 사서 미국 주식을 매수하면 매수 직후부터 환차손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었지만 개인투자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AI·반도체 기술주 쏠림 심화

지난달 개인투자자들의 순매수 1위 종목은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으로 10억556만달러에 달했다. 알파벳은 지난달 19일 차세대 AI 모델 ‘제미나이 3.0’을 출시하며 주가가 급등했다.
제미나이 3.0은 오픈AI의 챗GPT 성능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엔비디아의 GPU 대신 자체 개발한 텐서처리장치(TPU)로 학습돼 AI 칩 시장 판도 변화를 예고했다.
이와 함꼐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를 3배로 추종하는 ‘디렉시온 반도체 3배 레버리지 ETF(SOXL)’가 7억4730만달러로 2위에 올랐다.
이어 엔비디아(7억1252만달러), 메타(5억5078만달러), 양자컴퓨터 기업 아이온큐(3억2100만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서학개미 탓” vs “구조적 문제”

정부는 최근 고환율의 주요 원인으로 서학개미의 해외주식 투자를 지목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만약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는다면 그건 서학개미들의 해외 주식 투자 때문”이라며 “젊은 분들이 해외 투자를 많이 하는 이유를 물어봤더니 ‘쿨하잖아요’라고 답해 깜짝 놀랐다”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은 내년 1월까지 증권사의 해외주식 투자 조장 행태에 대한 특별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반발이 거세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올해 1~3분기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투자는 245억1400만달러로, 개인투자자(166억2500만달러)의 1.5배에 달했다.

전체 내국인의 해외 주식 투자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4%로 개인투자자(23%)보다 11%포인트 높았다.
이낙원 NH농협은행 FX파생전문위원은 “개인투자자 해외 주식 매수세가 수급상 상승 동력이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환율이 올랐다고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달러 강세 국면에서 대미 투자 부담을 안은 엔화와 원화의 절하 폭이 컸고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도 더해졌다”고 지적했다.
원화 강세 전환 전망도

흥미롭게도 월가에서는 원화가 최악의 국면을 지나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원화의 최악의 상황은 끝났다”며 “미국의 금리 인하와 한국의 금융완화 종료가 맞물리면서 내년에는 원화 하락세가 반전될 것”으로 예상했다.
제임스 로드 모건스탠리 전략가는 “통화 정책의 변화와 무역 긴장의 완화”를 근거로 들며 “위험 대비 보상이 통화의 회복과 평가 절상에 더 기울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1일 뉴욕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장 서울환시 종가 대비 2.60원 하락한 1468.00원에 마감하며 낙폭을 키웠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원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원화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돈을 잃는다는 공포가 커지고 있다”며 “원화 자산 회피 심리가 고환율 국면에서 해외주식 매수를 더욱 부추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