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150만원 더 든다”… 기름값 2000원 시대, 정부 30년 만에 ‘최고가격제’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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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 최고가 제한
8일 서울의 한 주유소/출처-뉴스1

“이대로라면 운행하고 손에 쥐는 것도 없이 손해를 볼 판입니다.”

경북 포항에서 대형화물차를 운전하는 김모씨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국내 경유 가격이 리터당 1,500원대에서 1,900~2,000원대로 치솟은 탓이다. 포항과 수도권을 한 번 오갈 때 드는 기름값은 55만원에서 70만원으로 늘었고, 한 달이면 150만원이 더 든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선언과 이란 혁명수비대의 위협, 트럼프 대통령의 지상군 투입 가능성 시사 등 중동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서울 시내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이 2,000원에 육박하자, 정부가 30년 만에 최고가격제 발동을 검토하고 나섰다. 유류세 인하폭 확대와 비축유 방출 등 다른 대안도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다.

현장의 비명… “4월부터는 배 못 띄울 수도”

7일 인천 중구의 한 주유소 앞/출처-연합뉴스

화물차 운전자들의 고통은 즉각적이지만, 어업인과 여객선사의 본격적인 타격은 이제 시작이다. 어업 면세유는 매달 말 기준으로 다음 달 가격이 정해지기 때문에 아직 오른 유가가 반영되지 않았다. 그러나 4월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울릉에 사는 한 어업인은 “아직은 2월 말 기준 유가로 받고 있지만 다음 달부터 오른 유가가 반영되면 많은 어민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손해 보면서 조업할 수는 없으니 못 나가는 배도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포항-울릉 간 여객선을 운항하는 대저페리는 유류할증료를 3월 2,300원에서 4월 4,700원으로, 두 배 이상 올리기로 했다. 회사 관계자는 “유류할증료를 반영하더라도 기름값이 많이 오르면 비용을 상쇄하는 데 큰 도움은 안 된다”고 토로했다.

금융시장 충격파… 코스피·환율 동반 폭락

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출처-뉴스1

실물경제만 흔들린 게 아니다. 유가 급등은 금융시장에도 즉각 충격파를 보냈다. 코스피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며 5,263.37에서 출발해 5,130선까지 급락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10%, 11% 이상 떨어졌고, 원·달러 환율은 1,492원을 기록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인 17년 만에 1,500원에 육박했다.

경제학자들은 에너지 순수입국인 한국이 환율 약세와 유가 상승이라는 이중 충격을 받고 있다고 분석한다. 서강대 경제학과 허준영 교수는 “에너지 비용이 올라가면 수입 비용이 올라가고, 경상수지가 악화될 것이며, 경제성장률은 당연히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건스탠리는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상승할 때마다 한국 소비자물가가 최대 0.6%포인트 오른다고 분석했다. 2022년 러시아 석유 금수 사태 당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을 때 국내 주유소 기름값은 2,100원을 돌파했고, 물가상승률은 1.7%포인트 뛰었다. 비료 가격은 일주일 새 30%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정부 비상 카드… UAE 긴급 원유 600만 배럴 도입

8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출처-연합뉴스

정부는 에너지 수급 안정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UAE로부터 총 600만 배럴(국내 하루 소비량의 2배)의 원유를 긴급 도입하기로 했고,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항만에 국적 유조선 2척(각 200만 배럴)을 즉시 접안시켰다. 현재 비축량은 7개월분으로 당장의 수급 위기는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시장 심리 진정과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추가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판단 아래, 정부는 30년 만에 최고가격제 발동을 검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시장 자율성과 긴급 상황 정부 개입 사이의 선택 압박”이라며 “유류세 인하 확대, 비축유 방출 등 여러 도구를 조합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동산 석유가 국내 수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세계 석유 공급의 21%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공습 이후 국제유가 상승이 시차 없이 동네 주유소까지 즉각 반영되는 만큼, 정부의 선제적 대응이 물가 파급을 얼마나 막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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