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가까이 베일에 싸여 있던 6조원대 배터리 계약의 고객사가 마침내 공식 확인됐다. 미국 정부가 직접 테슬라와 LG에너지솔루션의 파트너십을 공개하면서, 업계 추정에 머물렀던 협력 관계가 국가 차원의 공식 사실로 격상됐다.
미국 정부는 지난 14~15일 도쿄에서 열린 인도·태평양 에너지 안보장관 및 비즈니스 포럼(IPEM)의 팩트시트를 통해 560억 달러(약 84조원) 규모의 에너지·인프라 투자 사업을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테슬라와 LG에너지솔루션이 미시간주 랜싱에 43억 달러(약 6조4천억원) 규모의 LFP 각형 배터리 셀 제조시설을 건설하는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명시했다.
이로써 2025년 7월 LG에너지솔루션이 비밀유지계약(NDA)을 이유로 고객사를 공개하지 않은 채 공시했던 ESS용 LFP 배터리 수주 계약의 실체가 처음으로 드러났다.
테슬라 ‘메가팩3’ 겨냥한 북미 배터리 공급망 구축
미국 정부의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시간주 랜싱 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 셀은 테슬라가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제조하는 대형 에너지저장장치(ESS) ‘메가팩3’에 탑재된다. 랜싱 공장은 LG에너지솔루션이 100% 독자 운영하는 시설로, 생산은 2027년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이 LG에너지솔루션이 각형 기반 LFP 배터리로 대규모 고객사를 확보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한다. LFP 배터리는 그동안 중국 기업들이 장악해온 영역으로, 국내 기업의 시장 진입은 제한적이었다.
공급망 현지화 압박이 만든 ‘이례적 동맹’
테슬라는 통상 공급망 정보 공개에 극히 보수적인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정부가 나서서 양사의 협력 관계를 공식화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배경에는 미국의 강화된 에너지 안보 정책이 자리한다. 현재 글로벌 ESS 핵심 기업 59개 중 49개가 중국 업체이며, 테슬라가 중국산 LFP 배터리 의존도를 낮추지 않을 경우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과 공급망 정책 대응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 내 생산망을 갖춘 LG에너지솔루션이 테슬라의 공급망 다변화 전략에 핵심 파트너로 부상했다고 분석한다.
ESS로 무게중심 이동하는 한국 배터리 업계
이번 계약은 전기차(EV) 중심이었던 양사의 배터리 협력이 ESS 영역으로 확장됐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전기차 수요 둔화 속에서 AI 데이터센터 증설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북미 ESS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 말 기준 누적 ESS 수주 140GWh를 기록했으며, 2026년 신규 수주 목표를 90GWh로 설정했다. 미국 내 ESS 생산능력도 2026년 말까지 30GWh에서 50GWh로 확대할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랜싱 공장은 북미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대와 연계된 배터리 공급망 구축에 기여할 것”이라며 “미국 정부가 강조하는 에너지 안보 및 배터리 공급망 현지화 정책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