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규직에서 한번 밀려나면 돌아올 길이 없다는 공포, 그리고 그 공포가 만들어낸 수십 년의 노사 불신.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이 구조적 벽을 정면으로 겨냥하며 노동 대타협의 틀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1기 출범을 계기로 열린 노동정책 토론회를 직접 주재했다. 기업이 원하는 고용유연성과 노동자의 고용안정 요구를 동시에 풀 수 있는 ‘사회적 균형점’을 찾겠다는 것이 이번 토론회의 핵심 메시지다.
악순환의 고리, 대통령이 직접 진단하다
이 대통령은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직접 설명했다. 기업이 정규직 고용의 경직성을 피해 비정규직을 늘리고, 노동자는 정규직 지위 박탈이 ‘참혹한 현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어떤 양보도 거부하는 악순환이다.
현재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약 70% 수준에 그친다. 이 대통령은 이를 두고 “똑같은 일을 하고도 소속이 다르다는 이유로 대가에 차별이 있는 것은 헌법상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며 “불안정성에 대한 대가를 고려하면 원래는 비정규직이 더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연성 전에 안전망 먼저’… 비용은 기업이 부담
이 대통령이 제시한 해법의 핵심은 순서다. 사회안전망을 먼저 충분히 구축한 뒤에야 고용유연성 확대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업급여 긴급생계비 지급 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린 조치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비용 부담의 주체도 명확히 했다. 이 대통령은 “고용 유연화로 혜택을 보는 기업이 강화된 안전망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며 “누군가의 일방적 손실이 아닌 사회적 타협을 통한 균형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안정성 없는 유연성은 노동시장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고 분석한다.
경사노위에 ‘의결 말고 대화’… AI 로봇세도 수면 위로
이 대통령은 경사노위의 역할 자체를 재정의했다. 과거 기구들이 강제 의결로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는 점을 직접 거론하며 김지형 위원장에게 “이번엔 의결하지 말자. 일단 대화부터 하자”고 제안했다. 수십 년간 쌓인 불신은 결과물 도출보다 신뢰 회복 자체가 우선이라는 판단이다.
나아가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노동 불안정 문제도 의제로 꺼냈다. 이 대통령은 “로봇세 같은 것도 나중에 논의해야 한다”며 AI 도입으로 혜택을 보는 기업이 사회적 비용을 분담하는 메커니즘 필요성을 언급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AI 논의가 노사정 대화 테이블에 공식 등장했다는 점 자체를 주목할 만한 변화로 평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