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대 규모의 기업 경영평가에서 삼성전자가 89조원대 ‘슈퍼 투자’를 집행하고도 SK하이닉스에 1위를 내줬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는 20일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비금융기업 249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올해 경영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SK하이닉스가 800점 만점에 648.3점을 획득해 종합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615.4점으로 2년 연속 2위에 머물렀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이 평가는 고속성장·투자·글로벌 경쟁력·지배구조 등 8개 부문을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HBM이 만든 ‘동시 석권’…성장·투자·건실경영 모두 상위권
SK하이닉스는 고속성장(매출 10조 이상 그룹 1위)·투자(2위)·건실경영(1위) 부문에서 고루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업계에 따르면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 급증이 매출·수익성·투자 확대 지표에 동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SK하이닉스의 설비투자는 28조 5,793억원으로 전년 대비 71.52% 급증했고, 연구개발(R&D) 투자도 6조 7,325억원으로 35.89% 늘어 총 35조 3,118억원을 집행했다. 매출 역시 97조 1,467억원으로 매출 순위가 전년 7위에서 5위로 두 계단 오르며 처음으로 ‘톱5’에 진입했다.
투자를 대폭 늘리면서도 건실경영 부문 1위에 선정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메모리 가격 회복과 고마진 HBM·서버 D램 비중 확대가 재무 건전성을 동시에 뒷받침한 결과다.
‘투자 절대 규모’ 앞선 삼성, 왜 종합 2위인가
삼성전자는 설비투자 52조 1,531억원, R&D 37조 7,548억원 등 총 89조 9,079억원을 집행해 투자 부문 절대 금액 1위를 기록했다. 조사 대상 기업 전체를 통틀어 전례 없는 규모다.
그러나 종합 평가에서는 SK하이닉스에 33점 가까이 뒤처졌다. 업계에서는 매출 333조원대의 거대한 저변을 보유한 삼성전자는 구조적으로 고속성장 지표에서 높은 증가율을 내기 어렵다고 본다. 투자 역시 파운드리·비메모리 등 광범위한 사업 전반으로 분산되는 반면, SK하이닉스는 HBM·첨단 메모리 공정에 집중돼 ‘투자 효율’ 측면에서 우위를 인정받았다.
카카오 첫 10위권·바이오·방산 부상…대기업 지형 다변화
KT&G(587.0점)가 전년 7위에서 3위로 뛰어올랐고, 셀트리온(584.0점)은 8위에서 4위로 상승했다. 카카오(523.5점)는 이번 평가에서 처음으로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카카오의 진입은 지배구조 부문 공동 1위(KT&G와 공동)와 투자 부문 3위(총 1조 9,136억원 집행)가 견인했다. 전문가들은 전통 제조·중공업 중심이었던 상위권에 플랫폼·IT 기업이 지배구조 개선과 R&D 투자로 진입하는 흐름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글로벌 경쟁력 부문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1위에 올랐다. 매출 4조 5,570억원 규모이지만 영업이익률이 45.41%에 달해 세계 10대 제약사인 중국 시노팜(영업이익률 2.79%)보다 42%포인트 이상 높았다. 방산 분야에서는 한화가 고속성장 부문 상위권에 올랐고,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는 일자리창출 우수기업에 포함됐다. 업계에서는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가 역설적으로 방산·조선 기업의 성장 지표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