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 로펌의 내부 전산망을 통해 변호사들의 이메일을 몰래 들여다보며 미공개 정보를 빼낸 뒤 수십억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전산 직원들이 법정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관리자 권한을 악용한 조직적 범행으로, 자본시장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판단이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김상연)는 10일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법무법인 광장 전산 직원 가모씨에게 징역 3년 6개월과 벌금 60억원, 추징금 18억 2000여만원을 선고했다. 같은 직장 동료였던 남모씨에게는 징역 3년과 벌금 16억원, 추징금 5억 2000여만원이 내려졌다. 두 사람은 각각 약 18억원과 5억원 규모의 부당이익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관리자 계정 악용한 조직적 범행
가씨와 남씨는 법무법인 광장에서 전산 직원으로 근무하며 관리자 계정과 접근 권한을 이용해 변호사들의 이메일과 내부 문서에 무단으로 접속했다. 공개매수(M&A)와 유상증자 등 기업의 중요한 미공개 정보를 취득한 뒤, 이를 바탕으로 주식 거래를 진행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전산관리 직원으로서 관리자 계정과 접근 권한을 가진 우월적 지위에 있었고 직무 수행 과정에서 정보를 알게 된 것”이라며 “직무 관련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범행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가족과 지인의 명의를 동원해 공시 전 집중 매수한 뒤, 공시 직후 곧바로 매도해 현금화하는 치밀한 방식이었다.
“주가 확신 없이는 불가능한 거래”
재판부는 미공개 정보 이용 여부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공시 전 가족과 지인 명의를 동원해 집중 매수하고 공시 직후 곧바로 매도해 현금화한 거래 양태를 보면 주가 상승에 대한 확신 없이는 하기 어려운 거래”라며 미공개 정보를 명백히 이용한 것으로 판단했다.
함께 재판을 받은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 산하 투자자문사 스페셜시튜에이션스(SS) 직원 고모씨 등 3명에게는 징역 1년~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3년과 벌금 3000만~3억 5000만원, 추징금 1억 1000여만~2억 2000여만원이 선고됐다. 이들은 주식공개매수 준비 회의나 투자 자료에서 얻은 미공개 정보로 직접 주식 거래를 하거나 지인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았다.
“자본시장 신뢰 훼손한 중대 범죄”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2년 넘는 기간 동안 조직적으로 미공개 정보를 확보하고 가족과 지인까지 동원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자본시장 공정성과 신뢰를 훼손한 중대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특히 “범행 과정에서 무단 열람 등 위법한 방법을 사용했고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진술을 번복하며 범행을 축소하려 했다”며 “죄질이 매우 무겁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로펌과 금융회사의 내부 정보 관리 시스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전산 관리 직원이라는 특수한 직책을 악용한 만큼, 업계 전반에서 내부 정보 접근 권한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전망이다. 다만 두 주요 피고인은 법정구속은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