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의 ‘대반전’… “설마 이럴 줄은” 세계 최강국이 韓 기업에 ‘SOS’ 친 이유

가스터빈 종주국 미국이 인정한 품질
데이터센터 전력난 해결사로 주목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역사적 전환

미국 빅테크 기업이 한국산 가스터빈을 선택했다는 소식이 업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동안 가스터빈 기술을 독점해온 ‘종주국’ 미국이 오히려 한국 제품을 사들이기로 한 것이다.

두산에너빌리티가 13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의 한 대형 IT 기업과 380MW급 가스터빈 2기 공급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산 가스터빈의 첫 해외 진출이자, 미국 시장 진입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1세기 동안 미국이 지배한 가스터빈 시장

미국이 가스터빈 ‘종주국’이라 불리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1899년 Charles Gordon Curtis가 세계 최초로 가스터빈 엔진 특허를 냈고, 이후 GE와 웨스팅하우스 같은 기업들이 기술 개발을 주도해왔다.

1949년 GE가 오클라호마에 세계 첫 상업용 발전소 가스터빈을 설치한 이후, 미국은 줄곧 이 분야의 기술 표준을 만들어왔다.

항공, 발전, 군수 부문에서 미국 업체들이 세계 시장을 좌지우지하며 각국 가스터빈 산업 발전의 교과서 역할을 해온 것이다.

한국의 기술 도약, 5번째 가스터빈 강국 등극

두산에너빌리티는 2019년 국내 대학과 연구기관들과 손잡고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국산화를 완성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독자적인 가스터빈 기술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기술 개발 후 성능 검증도 철저히 진행했다. 김포 열병합발전소에서 1만5000시간 넘게 실증 운전을 돌려 안정성과 효율성을 입증했다. 이 과정을 거쳐 이번까지 총 8기의 가스터빈 공급 계약을 잇달아 따내며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번 미국 수출의 배경에는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가 있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들이 기존 전력망만으로는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 자체 발전 설비를 찾고 있다. 건설 기간이 짧고 공급이 안정적이며 효율이 높은 가스터빈이 최적의 해답으로 떠오른 것이다.

현지 서비스까지 완벽 대비, 글로벌 진출 발판

두산에너빌리티는 단순한 제품 공급에 그치지 않고 사후 관리까지 완벽하게 준비했다. 미국 휴스턴에 있는 가스터빈 서비스 전문 자회사 DTS가 앞으로 공급되는 가스터빈의 정비와 유지보수를 맡게 된다.

가스터빈 사업에서는 초기 공급만큼이나 지속적인 서비스가 중요하다. 현지에 서비스 거점을 확보한 것은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크게 높이는 요소가 될 전망이다.

손승우 두산에너빌리티 파워서비스BG장은 “대한민국이 가스터빈을 사들이던 나라에서 팔아주는 나라로 바뀌는 의미 있는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품질과 납기 준수로 고객 믿음에 부응하며, 미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 진출을 더욱 가속화하겠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이번 수출은 한국 제조업의 기술 자립도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오랫동안 선진국 기술에 의존해온 발전 산업에서 이제는 우리 기술로 세계 시장에 도전하는 전환점을 맞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