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희토류-반도체 맞교환
국내 기업 HBM 공급 재개 전망
삼성·SK 하반기 실적 개선 기대

세계 패권 국가의 돌발적인 통상 결정이 한국 반도체 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엔비디아 AI 칩 수출을 전격 허가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지형도가 빠르게 재편되는 모양새다.
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간 복잡한 힘겨루기 속에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예상치 못한 수혜를 입게 됐다.
저가 AI칩 대중국 수출, 희토류 맞교환 승부수
“우리는 중국에 네 번째로 좋은 제품을 파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미국 상무부 하워드 러트닉 장관의 이 한마디가 전 세계 반도체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AI 기술 견제를 위해 엄격히 통제해 온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H20 칩 수출을 허가하기로 전격 결정한 것이다.
미국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희토류라는 핵심 자원이 있었다.
러트닉 장관은 15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과 희토류 자석 합의를 하면서 우리는 중국에 칩을 다시 판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6월 런던에서 열린 미중 무역 협상에서 중국의 대미 희토류 수출통제와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 일부 해제를 맞교환한 것이다.
러트닉 장관은 “H20은 구형 모델이란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전임 정부가 중국 판매를 허용했으나 우리는 이를 재검토했다. 그러나 이제 엔비디아가 완전히 새로운 최신 칩을 출시했다”고 강조했다.
中 반도체 기술력 격차 여전… 미국의 계산된 승인
이러한 무역 협상의 이면에는 중국의 반도체 기술 발전 속도와 자립 수준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다.
2025년 현재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20~30%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이는 당초 목표였던 70%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대규모 투자와 정부 주도의 기술 개발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외국 기술과 기업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첨단 미세공정(5nm 이하) 및 EUV(극자외선) 장비 분야에서는 수입 의존도가 높고, 한국과의 기술 격차도 여전하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과 1~5년의 기술 격차가 존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저사양 AI 칩의 대중 수출을 허가한 것은 중국의 완전한 기술 자립을 견제하면서도 일정 부분 미국 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이중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사이익’ 기대
미국의 대중 수출 허가와 중국의 반도체 자립 한계는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들에게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번 엔비디아의 H20 칩 대중국 수출 재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단됐던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핵심 부품 공급을 다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두 한국 기업은 재고 부담을 빠르게 해소하고 하반기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H20에 탑재되는 HBM의 주요 공급사인 만큼, 이번 결정으로 삼성의 매출이 즉각 반등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HBM 시장 1위로서 중국향 수요 증가에 간접적인 혜택을 볼 가능성이 크다. H20의 분기당 중국 공급 규모가 수조 원 이상으로 추정됨에 따라, 의미 있는 실적 개선이 전망된다.
이는 결국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줄다리기에서 한국이 예상치 못한 수혜자가 되는 형국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미국의 수출 규제 완화가 “일회성 조치”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미국이 엔비디아의 사정과 글로벌 공급망 유지 필요성, 중국 반도체 자립 가속화 우려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결정이라는 시각이 있어, 언제든 규제가 다시 강화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