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막혔다. 미국과 이란 간 협상이 결렬되면서 국내 반입이 기대됐던 약 1400만 배럴 규모의 원유 도입이 사실상 무산됐다. 해협에 발이 묶인 유조선은 단 한 척도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정부는 비축유를 방출하지 않고도 4~5월 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브라질, 호주 등 17개국에서 총 1억1000만 배럴의 대체 원유를 확보한 것이 그 근거다.
봉쇄 현실화…정부 ‘수급 이상 없다’ 자신감의 배경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2일 언론 인터뷰에서 “비축유를 방출하지 않고도 이달과 5월을 넘길 수 있을 것”이라며 “5월 물량은 평시 대비 80% 수준까지 확보됐다”고 밝혔다. 정부가 확보한 대체 원유는 4월 5000만 배럴, 5월 6000만 배럴로 집계된다.
이는 주요국들이 잇따라 비축유 방출에 나서는 것과 대조적인 행보다. 에쓰오일은 사우디산 원유 208만 배럴을 홍해 경유 우회 항로로 처음 반입하는 데 성공하면서 대체 항로의 실효성을 실증했다. 정부는 이번 주 중으로 추가 확보 성과를 공개할 방침이다.
카자흐스탄·오만 ‘이중 축’…호르무즈 의존도 구조적 낮춘다
정부가 구상 중인 대체 공급 전략의 핵심은 카자흐스탄과 오만을 양 축으로 하는 이중 구조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 노보로시스크 항을 거쳐 흑해로 연결되는 파이프라인을 활용한 우회 수송 모델이 중심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는 공급망을 확보함으로써 지정학적 리스크를 구조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카자흐스탄에는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아리스탄 광구(일평균 1만 배럴)와 쿨잔 광구(일평균 4100배럴)가 이미 가동 중이다. UN 무역정보센터(COMTRADE)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카자흐스탄산 원유 수입 규모는 일평균 약 30만 배럴로, 국내 일일 원유 소비량(약 300만 배럴)의 10%에 해당한다. 기존 물량을 국내 전환하고 중장기 계약을 확대할 경우 중동 의존도를 일부 낮출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만은 두쿰과 소하르 항만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 아라비아해로 직접 수출이 가능한 비(非)호르무즈 루트의 핵심 거점이다. 봉쇄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공급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시장에서 평가된다.
카자흐스탄 협상 ‘진전’…중장기 공급망 재편 가시화되나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7일 전략경제협력 특사 자격으로 카자흐스탄·오만·사우디아라비아 방문길에 올랐다. 김 장관은 “카자흐스탄은 기업이나 정부 입장에서 선호하기 어려운 지역인데, 이번 사건을 겪으며 원유 수입 다변화의 중요성을 실감했다”며 “진전이 꽤 있어 다음 주 초 구체적 물량 등 좋은 소식을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카자흐스탄 루트의 과제로 운송 거리 증가에 따른 비용 상승, 흑해-수에즈 구간의 물류 병목 가능성 등을 짚는다. 양기욱 산업부 산업자원안보실장도 “카자흐스탄 원유 수송은 흑해를 거쳐 수에즈운하로 돌아오는 방식이라 운송 거리가 길지만 수송에 특별한 문제는 없다”고 설명한 바 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특정 지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공급망 다변화는 단기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방향이라고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