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하자마자 국내 전분당 업체들이 일제히 가격 인하 카드를 꺼내들었다. 담합 의혹이 제기된 지 채 한 달도 안 돼 대상, CJ제일제당, 사조CPK 등 주요 업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가격을 낮추면서, 그간 과점 시장에서 가격 결정력을 쥐고 있던 업체들의 ‘민낯’이 드러나는 분위기다.
공정위는 현재 국내 전분당 시장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대상, 삼양, 사조CPK, CJ제일제당 등 4개 업체를 대상으로 담합 의혹을 조사 중이다. 전분당은 과자, 음료, 소스 등 가공식품의 필수 원료로, 이들 4개사가 시장을 과점하고 있어 가격 결정력이 소수에 집중된 상황이었다.
조사 소식이 알려지자 업체들의 움직임은 빨랐다. 사조CPK는 23일 전분, 물엿, 과당 등 주요 제품 가격을 3~5% 인하한다고 밝혔다. 실수요처, 대리점, B2B, B2C 등 모든 유통 경로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CJ제일제당도 지난달 B2B 전분당 가격을 3~5% 내린 데 이어, 이날 B2C 제품 가격을 최대 5%까지 추가 인하했다.
담합 조사 나온 뒤 ‘도미노 인하’
공정위 조사가 가시화되면서 대상은 지난 13일 청정원 올리고당 3종과 물엿 등 B2C 제품 가격을 5% 낮췄고, B2B 제품도 평균 3~5% 인하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공정위 조사가 본격화되기 직전이었다.
업체들은 “국제 원재료 가격 변동 반영”과 “정부 물가안정 기조 동참”을 이유로 내세웠다. 사조CPK 측은 “원재료 가격 변동 등 시장 상황을 반영해 파트너사의 부담을 완화하고 물가 안정에 기여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CJ제일제당도 “최근 국제 원재료 가격을 반영하고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에 적극 동참하는 취지”라고 밝혔다.
하지만 공정위 조사 착수 직후 거의 동시에 가격 인하를 단행한 점은 조사에 대한 선제적 대응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탕·밀가루까지… 식품 원재료 시장 ‘전방위 조사’
공정위의 칼날은 전분당에만 머물지 않는다. 설탕과 밀가루 등 생활 물가와 직결된 원재료 시장 전반에 대해 담합 여부를 전방위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실제로 가격 담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제분·제당업체들도 지난달 연이어 가격 인하 방침을 발표했다.
CJ제일제당은 B2C 설탕·밀가루 전 제품 가격을 내렸고, 삼양사도 B2C 및 B2B 설탕과 밀가루 가격을 평균 4~6% 낮추기로 했다. 사조동아원은 밀가루 제품 가격을 평균 5.9%, 대한제분도 일부 제품을 평균 4.6% 인하했다.
업계에서는 “전분당 제품이 가공식품의 필수 원료인 만큼 이번 인하 조치가 식품 산업 전반의 물가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공정위의 조사가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실제 담합 여부와 그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과점 시장의 그림자, 소비자 부담으로
이번 사태는 소수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한 과점 구조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전분당, 설탕, 밀가루 모두 일상 식품의 필수 원료임에도 불구하고, 4~5개 업체가 시장을 나눠 갖고 있어 가격 담합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다.
과점 시장에서는 기업들이 암묵적으로 가격을 맞추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공정위의 이번 조사가 실제 담합 행위를 적발하고 처벌로 이어진다면, 향후 유사한 시장 구조를 가진 업종에도 경종을 울릴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위의 전방위 조사는 생활 물가와 직결된 기초 식품 원재료 시장에서 담합 행위를 적극 감시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조사 결과에 따라 업체들의 과징금 부과나 형사 고발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