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란 한 판 가격이 6천800원에 육박하는 동안,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 국내 산란계 사육 마릿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농가들이 협회를 통해 3년간 사실상 계란 산지 기준가격을 결정해온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4일 대한산란계협회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5억9천400만원을 부과하기로 소회의에서 의결했다. 2023년 1월 설립된 산란계협회가 올해 1월까지 회원 농가에 계란 산지 거래 기준가격을 결정·통지해온 행위가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 금지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산란계협회는 580개 농가로 구성되며, 이들이 사육하는 산란계는 국내 전체 사육 마릿수의 56.4%를 차지한다. 시장의 과반을 움직이는 단체가 가격 결정에 개입해온 셈이다.
매주 수요일 문자로 ‘가격 재안내’… 비회원까지 영향권
협회는 지역별 특별위원회를 통해 왕란·특란·대란·중란·소란 등 규격별 산지 기준가격을 수시로 결정했다. 일부 농가를 대상으로 ‘희망 가격’을 조사한 뒤 이를 토대로 기준가격을 임의 확정하고, 팩스·문자·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했다.
특히 새로운 가격 결정이 없는 경우에도 매주 수요일 소속 농가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 기존 가격을 재안내하는 방식으로 가격 수준을 유지했다. 공정위는 협회가 비회원 농가에게까지 기준가격을 안내해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문재호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사업자단체가 가격 결정에 영향을 주는 것 자체가 법 위반 행위”라며 “회원이 아닌 농가에도 기준가격을 안내해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생산비는 떨어지는데 기준가격은 올라… 농가 순수익 ‘육계의 10배’
공정위가 공개한 수치는 충격적이다. 협회가 설정한 기준가격(특란 30개·수도권 기준)은 2023년 4천841원에서 2025년 5천296원으로 2년간 9.4% 올랐다. 반면 같은 기간 원란 1개당 생산비는 2023년 4천60원에서 2024·2025년 각각 3천856원으로 오히려 하락했다.
기준가격과 생산비의 격차는 2023년 781원에서 2025년 1천440원으로 확대됐다. 이 결과 산란계 농가의 2024년 기준 평균 순수익은 3억7천750만원에 달해 육계·돼지 농가와 비교해 약 3~10배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소비자 계란 가격도 2023년 6천491원에서 2025년 6천792원으로 2년간 4.6% 올랐다.
산지 가격 상승이 도소매 유통 단계를 거치며 소비자 가격을 연쇄적으로 밀어 올리는 구조가 확인된 것이다.
단기 가격 하락은 제한적… 정부, 가격 조사위원회 신설 검토
공정위는 협회의 기준가격 안내 행위가 중단되더라도 단기간에 계란 가격이 내려가기는 어렵다는 현실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경쟁법 전문가들은 계란과 같이 동질적인 농산물 시장에서는 협회가 ‘기준 가격’을 제시하면 실거래가격이 그 수준에 수렴하는 구조가 쉽게 형성된다고 전했다.
농업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협회의 가격 개입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는 시장 구조의 근본 문제인 중간 마진과 유통 단계의 불투명성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개별 농가의 협상력이 약한 구조에서 가격 신호를 시장에만 맡기면 대형 유통업체 종속이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문 국장은 “농림축산식품부가 계란 가격 조사위원회 설치 등을 통해 산지 가격의 적정성을 검증할 준비를 하고 있는 만큼, 계란값 안정을 위해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공정거래법 전문가들은 이번 제재가 다른 축산·농산물 협회들의 기준가격 공표 관행 전반에 대한 연쇄 점검으로 이어질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