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지정학적 긴장이 절정에 달했던 당시, 달러·원 환율은 1540원선을 위협했다. 그로부터 불과 수개월 만에 해외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연말 환율 목표치를 잇달아 낮추며 원화 회복 시나리오에 무게를 싣고 있다.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 리서치는 15일 올해 4분기 말 달러·원 환율을 1400원으로 제시했다. 이는 이달 초 제시한 1460원보다 60원, 지난 4월 보고서의 1470원보다 70원 낮은 수준이다.
ING는 연말 1425원, 내년 1분기 1400원을 전망했고, 싱가포르계 유나이티드오버시즈뱅크(UOB)도 5월 전망을 지난달 1490원에서 1480원으로 10원 낮췄다. 기관별 눈높이 차이는 있지만, 원화 약세 압력이 정점을 지나 완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방향성은 뚜렷해지고 있다.
반도체 수출 ‘역대급’ 호조가 원화 회복 기대 뒷받침
원화 강세 기대의 가장 직접적인 근거는 수출 실적이다.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48.0% 증가한 858억 9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3월에 이어 두 달 연속 800억 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특히 반도체 수출이 전체 수출 증가세를 이끌었다. 인공지능(AI) 서버 투자 확대와 메모리 가격 상승이 맞물리면서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회복된 결과다. 이영화 부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반도체 수출이 역대급 호조를 보이며 성장률 전망 상향 기대가 환율 전망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개인의 해외주식 매수세가 둔화하고 국내 주식 매수세가 나타나는 점도 원화 수급에는 긍정적인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수출 호조에 따른 무역수지·경상수지 개선 기대도 환율 하락 압력을 높이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민연금·WGBI, 구조적 원화 수요 확대 요인으로 부상
수출 호조 외에도 구조적 자금 흐름 변화가 원화 약세 압력을 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의 환 헤지 비율 상향과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기대에 따른 외국인 채권자금 유입 가능성이 그 핵심이다.
국민연금이 해외 자산 투자 시 환 헤지 비율을 높이면 달러 매도·원화 매수 수요가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한다. WGBI 편입이 현실화될 경우 글로벌 채권 인덱스 펀드의 한국 국채 매입이 의무화돼 외국인 자금 유입이 구조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영화 이코노미스트는 “외국인 매도세가 둔화하고 있다”며 원화 수급 개선의 실질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중동 리스크·연준 기조, 여전한 환율 반등의 뇌관
시장에서는 원화가 단기간 내 급격히 강세로 전환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하락 압력을 받는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다만 변수는 여전히 두 가지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은 “중동 변수는 올해 내내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에 미치는 민감도는 떨어질 것”이라며 “초기처럼 큰 공포 심리가 반복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수출 호조와 기업 순이익 개선, 성장률 전망 상향 기대가 대외 신인도를 높이고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연준(Fed)의 통화정책 전환 가능성은 더 예민한 변수로 꼽힌다. 서 연구위원은 “연준이 인하 사이클을 조기 종료하고 인상 가능성을 다시 열어둘 경우 원화 강세 흐름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영화 이코노미스트 역시 “연말까지 환율이 하향 안정될 가능성이 크지만, 미 연준의 금리 기대가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환율이 되돌려질 여지도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