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전쟁 장기화 여파가 국내 건설 현장의 자재 수급과 공사 일정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번지고 있다. 정부는 아직 공사 전체가 멈춘 사례는 없다고 판단하면서도, 공급 불안이 길어질 경우 다음 달 일부 현장에서 전면 중단 위험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토교통부 김이탁 1차관은 2026년 4월 23일 재정경제부 주관의 ‘민생 물가 특별 관리 관계 장관 TF 회의’에서 건설 자재 가격·수급 동향과 대응안을 보고했다. 국토부는 “현재까지 공사 전체가 중단된 곳은 없으나 5월 중 현실화 우려가 상존한다”며 단열재·방수재·실란트·아스콘 부족으로 일부 공정 중단 사례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아스콘 공급 70% 감소…도로 공정 우선 관리
국토부 조사에 따르면 도로포장 핵심 자재인 아스콘은 2026년 3월 기준 공급량이 전년 동기 대비 약 70% 감소했다. 원료인 아스팔트 가격은 중동전쟁 개전 이후 20~30% 상승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아스팔트 생산이 중동산 중질유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 수급 불안을 키우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정부는 아스콘 수요를 도로 복구, 장마철 대비 유지·보수, 지역 행사 연계 도로 등 안전·민생 관련 현장 중심으로 우선 관리하고 있다. 국토부는 타 공정을 먼저 진행하는 방식으로 전체 공정 중단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장 점검도 확대됐다. 국토부는 4월 10일부터 서울·부산·대전·익산·원주 등 5개 국토지방청 특별 점검을 진행했고, 4월 17일 기준 공장 등 전국 274곳의 자재 수급 동향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개전 이후 자재 가격 연쇄 상승
가격 상승은 아스콘에만 그치지 않았다. 국토부 조사에서 중동전쟁 개전 이후 레미콘 혼화제는 최대 30%, 단열재는 최대 40%, 접착제는 30~50%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플라스틱 창호·실란트·철근도 일부 제품 가격이 10% 안팎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업계에서는 이런 흐름이 금리·환율 부담과 겹치며 비용 압박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건설공사비지수는 2026년 2월 133.6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일부 대형 건설사는 협력업체로부터 전쟁 장기화 시 자재 단가를 10~40% 올릴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중견·중소사 유동성 부담 확대…정부는 수요 관리 강화
건설업계는 중동발 원가 상승에 제도·노무 부담까지 겹친 복합 압박을 호소하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 박철한 연구위원은 중동 정세 불안이 장기화하면 레미콘·시멘트·철근 등 전 공정으로 비용 상승 압력이 확산되고, 착공 지연과 건설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대형 건설사가 2~3개월치 자재를 선확보한 것과 달리 중견·소형 건설사는 자금 여력 차이로 충격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사 지연 시 지체상금(통상 공사비의 0.1~0.15%)이 누적될 수 있어 수익성 악화 위험이 커진다는 설명이다.
국토부는 시급하지 않은 공사 발주 시기를 조정하고 긴급 공사에 자재를 우선 납품하는 수요 관리 방침을 유지할 계획이다. 매주 자재 수급 동향 브리핑으로 시장 정보를 공유하고, 담합·매점매석 등 시장 교란 행위 신고가 접수되면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 부처와 즉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