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리비안 합작 ‘RV 테크’
신규 소프트웨어 플랫폼 개발
조널 아키텍처로 비용 절감 노려

폭스바겐과 리비안이 공동으로 설립한 전기차 소프트웨어 합작법인 RV 테크(RV Tech)가 개발 중인 플랫폼이 2026년부터 본격 적용될 예정인 가운데, 이 기술을 제3의 완성차 업체에도 개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테슬라와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주도하던 차량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독자적인 길을 찾지 못했던 폭스바겐이, 과거의 실패를 딛고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지 주목된다.
소프트웨어로 다시 뛰는 폭스바겐
RV 테크는 폭스바겐 그룹과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이 공동으로 설립한 합작법인으로, 조널 아키텍처(zonal architecture) 기반 차량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이 아키텍처는 차량의 전·중·후면을 통합적으로 제어해 제어기 수를 줄이고 제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구조다. 테슬라와 BYD, 샤오미 등이 이미 채택한 방식으로, 폭스바겐과 리비안은 이 기술을 통해 테슬라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따라잡겠다는 전략이다.

RV 테크는 2026년 1분기 리비안의 신형 전기 SUV ‘R2’를 시작으로, 2027년에는 폭스바겐의 소형 전기차 ‘ID.1’에 해당 소프트웨어를 탑재할 계획이다.
이어 2028년 이후에는 폭스바겐 산하의 스카우트 브랜드 픽업트럭과 SUV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RV 테크는 이 기술이 내연기관 차량에도 일부 적용 가능하다고 밝혀, 전기차에 국한되지 않은 확장성을 시사했다.
RV 테크 공동 의장이자 리비안 소프트웨어 총괄 와심 벤사이드는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팰로앨토에서 열린 행사에서 “우리는 자동차 산업 전반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며 “향후 폭스바겐·리비안 외의 다른 완성차 업체(OEM)들도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실패 딛고 되살아나는 폭스바겐
폭스바겐은 그간 자체 소프트웨어 조직인 ‘카리아드(CARIAD)’를 통해 전기차 플랫폼 개발을 시도했지만, 개발 지연과 각종 버그로 인해 수년간 브랜드 신뢰도에 타격을 입었다.
카리아드의 고위 임원진은 해임됐고, 프로젝트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폭스바겐은 리비안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는 셈이다.

폭스바겐은 이번 합작을 위해 최대 58억 달러(한화 약 8조 5030억 원)를 투입하며, 그 어느 때보다 큰 전략적 베팅에 나섰다. 이는 전기차 수요 둔화와 유럽 및 미국 시장에서의 판매 부진, 중국 내 점유율 하락 등 여러 악재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RV 테크가 개발 중인 소프트웨어는 차량 크기나 세그먼트에 관계없이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유럽과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확산이 예상된다.
벤사이드는 “우리가 만드는 기술 솔루션은 범용성과 확장성을 기반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흔들림 속 기회 찾는 RV 테크
다만 양사 간 협력 관계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독일의 경제 전문지 ‘매니저 마가진’은 두 달 전, 폭스바겐과 리비안의 협력에 차질이 생겼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폭스바겐이 내연기관 차량을 당분간 유지하기로 방침을 바꾸면서 리비안의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을 쉽게 이식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했고, 그 결과 일부 전기차 모델의 출시가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우디의 ‘Q8 e-트론 SUV’와 ‘A4 e-트론’의 출시 시기가 2028년 중반 이후로 미뤄졌고, 포르쉐의 고급 전기 SUV ‘K1’ 역시 출시가 무기한 연기됐다. 리비안의 알고리즘을 그대로 내연기관 플랫폼에 이식하는 데 기술적 한계가 있다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V 테크는 조널 아키텍처 기반의 플랫폼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에도 적용 가능하다고 밝히며, 기술의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벤사이드는 이 기술의 라이선스 사업이 기존 차량 제조 사업과는 전혀 다른 수익 구조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완성차 제조와는 다른 차원의 수익성과 사업 모델을 갖고 있다”며 단순 제조를 넘어선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기술 판매, 이제는 현실로?
RV 테크의 기술은 아직 일부 기능의 개발과 테스트가 진행 중이지만, 업계에서는 이 플랫폼의 타 제조사 판매 가능성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차량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기 어려운 완성차 업체들이 이 기술에 관심을 보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디지털화에 어려움을 겪어온 전통 완성차 업체들에게는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배경 속에서, 폭스바겐과 리비안이 공동 개발한 조널 아키텍처 기반 플랫폼이 업계 표준으로 자리잡을지, 그리고 테슬라에 이어 차량 소프트웨어 시장의 판도를 다시 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