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권 재등록·공장 재매입, 현대차의 복귀 시그널
러시아 재진출 물밑 준비에 업계 긴장

현대자동차가 러시아 상표권을 다시 등록했다. 지난해 단돈 14만 원에 매각했던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과 관련된 복귀 가능성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현지 특허청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최근 ‘HYUNDAI’ 상표를 다시 등록했고 기아도 동시에 다수의 신규 상표를 출원했다. 러시아 철수 이후 3년 만의 움직임이다.
특히 현대차는 해당 공장 매각 당시 ‘2년 내 재매입 가능’ 조건을 붙여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이 같은 일련의 조치들을 러시아 시장 재진입을 위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
조용히 되살린 상표권… ‘철수’는 끝나지 않았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은 최근 러시아 특허청(Rospatent)에 ‘HYUNDAI’ 상표권을 재등록했다. 이는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장 가동을 멈춘 이후 약 3년 만의 행보다.
러시아 현행법상 상표 미사용 3년이 지나면 등록이 취소되기 때문에, 이번 재등록은 ‘단순 연장’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현대차가 러시아 시장을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는 방증인 셈이다.

기아도 동시에 8건의 새로운 상표를 출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 ix10’, ‘기아 마이 모빌리티’ 등 차량 및 부품 관련 상표가 포함됐고 업계는 이를 사전 포석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2024년 해당 공장을 단돈 1만 루블(한화 약 14만 원)에 매각하면서도 ‘2년 내 재매입 가능한 바이백 옵션’을 포함시켰다. 올해 말까지 재매입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가운데, 상표 재등록은 그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2021년 당시 현대차와 기아는 러시아에서 37만 8000대를 판매하며 현지 브랜드 라다를 제외한 사실상 유일한 외국계 주요 브랜드로 군림했다.
특히 ‘솔라리스’, ‘리오’ 등 중산층을 겨냥한 전략 차종은 러시아 현지에서 ‘국민차’로 통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치고 올라온 중국차… 그러나 소비자는 불신 중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 시장의 주도권은 순식간에 중국 브랜드로 넘어갔다.
러시아 정부의 서방 제재 대응으로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철수하자, BYD, 체리, 하발 같은 중국 업체들이 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 시장 점유율 60% 이상을 장악했다. 하지만 소비자 반응은 미지근하다.

러시아 시장조사기관 아우토스타트가 2024년 9월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7.6%가 “절대 중국차를 사지 않겠다”고 답했다.
주요 이유는 낮은 품질과 A/S 불안, 부품 수급의 어려움이었다. 실제로 러시아 정부는 2023년 하반기부터 병행수입 제한, 간이 인증 폐지, 재활용 수수료 인상 등 중국차에 불리한 규제를 연이어 도입하며 견제에 나섰다.
이러한 상황은 현대차에게 기회일 수 있다. 과거의 브랜드 신뢰도와 현지화 경험, 유통망 인프라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에서 경쟁자의 약점을 공략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 이후’를 준비하는 복귀 시나리오
현대차그룹의 복귀 시나리오는 러시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 시장에서도 재기를 노리고 있다.
베이징현대는 최근 ‘2025 베이징 국제 모터쇼’에서 신형 전기 SUV ‘엘렉시오’를 공개하며 2027년까지 6종의 전기차를 내놓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밝혔다.
중국 내 점유율이 0%대로 떨어진 현대차가 다시 시장에 뛰어드는 배경에는, 미국 수출 중심 구조에 대한 리스크 분산 전략도 깔려 있다.

러시아 시장에서도 비슷한 전략이 전개 중이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현대차는 최근 차량 및 부품 관련 상표권 20건 이상을 러시아 현지에 등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공장 재매입 옵션까지 감안하면, 단순한 ‘가능성 탐색’이 아니라 구체적인 ‘복귀 플랜’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현지 공장을 보유한 기업은 러시아 정부의 수입 억제 정책을 피할 수 있는 반면, 수출에만 의존하는 중국 업체는 점점 불리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수입 차량에 부과되는 재활용 수수료는 지난해 10월 최대 85% 인상된 데 이어 올해 1월에도 추가로 올랐다. 이는 현대차가 공장을 재매입할 경우 다시 한 번 우위를 점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14만 원의 복귀 카드’, 현실화될까
현대차가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단돈 14만 원에 넘기면서도 2년의 재매입 권리를 남긴 결정은 전략적 포석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복귀 카드는 조용히 현실화될 채비를 하고 있다.

상표권 재등록과 공장 재매입 옵션, 경쟁자의 품질 리스크 및 소비자 불신, 러시아 정부의 수입 억제 정책까지 복합적인 요소들이 현대차의 재진입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다만 현대차가 러시아에서 다시 시동을 걸 수 있을지, 그 운명의 키는 국제 정세가 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