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월, 유튜브에서 누적 조회수 47억회, 구독자 3,500만명, 연간 수익 147억원을 기록하던 거대 채널 16곳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이들의 공통점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복사+붙여넣기’ 식으로 영상을 대량 생산해온 ‘AI 슬롭(Slop·찌꺼기)’ 채널이었다는 점이다. 미국 동영상 편집 플랫폼 캡윙이 조사한 AI 슬롭 상위 100개 채널 중 16%가 일제히 영구 삭제되거나 비공개 처리되면서, 플랫폼 생태계를 둘러싼 새로운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삭제된 대표 채널 중 ‘쿠엔토스 파시난테스’는 드래곤볼 등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AI로 합성해 구독자 590만명을 확보했고, 누적 조회수만 12억8,000만회에 달했다. ‘임페리오 데 헤수스’는 종교 콘텐츠와 퀴즈 형식으로 580만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이들은 모두 AI 음성 합성과 자동 생성 이미지를 활용해 하루에도 수십 개의 영상을 찍어냈다.
플랫폼의 ‘AI 찌꺼기’ 전면전 선언
유튜브를 비롯한 글로벌 플랫폼들이 저품질 AI 콘텐츠 제재에 나선 배경에는 생존 위기감이 자리하고 있다. 닐 모한 유튜브 최고경영자(CEO)는 2026년 1월 연례 서한에서 “AI 기반 저품질 콘텐츠와의 싸움”을 올해 최우선 과제로 선언했다. 그는 “진짜와 AI 생성물을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변곡점에 서 있다”며 강력한 대응을 예고했다.
유튜브는 2025년 7월 15일부터 음성 합성(TTS) 등을 사용한 AI 슬롭의 수익 창출을 전면 금지했다. AI 사용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동 생성 콘텐츠나 교육적 가치 없이 텍스트만 읽어주는 영상, 맥락 없이 대량 복제된 콘텐츠는 커뮤니티 가이드라인 위반으로 규정했다. 틱톡은 AI 생성 콘텐츠에 라벨 부착을 의무화했고, 메타는 2024년부터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AI 콘텐츠 자동 인식 시스템을 도입했다.
플랫폼들이 이처럼 강경 대응에 나선 이유는 명확하다. 저품질 영상이 추천 알고리즘을 오염시켜 이용자 이탈이 증가하고, 자동 생성 영상 급증으로 서버와 트래픽 비용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유튜브는 과거 아동 대상 부적절 콘텐츠인 ‘엘사게이트 사건’으로 대형 광고주 이탈을 경험한 바 있어, AI 슬롭으로 인한 플랫폼 신뢰도 훼손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이 세계 1위 소비국, ‘부업 신화’의 종말
충격적인 것은 한국이 AI 슬롭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캡윙 조사에 따르면 한국 기반 AI 슬롭 채널의 누적 조회수는 84억5,000만회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이는 “챗GPT와 영상 생성 AI만 있으면 하루 1시간 투자로 월 3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유료 강의 홍보가 온라인에 범람하면서 형성된 ‘AI 부업’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기계적 대량 생산에 의존해 수익을 올렸다. AI로 생성된 이미지에 음성 합성을 입히거나, 유사한 구조의 영상을 반복 제작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유튜브가 ‘기계적 대량 생산’을 스팸으로 규정하고 제재하기 시작하면서, 양산형 채널들의 설 자리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한때 부업의 성지로 여겨졌던 AI 콘텐츠 시장이 사실상 붕괴 위기에 처한 것이다.
오탐 논란과 창작자 구분의 딜레마
문제는 ‘AI 옥석 가리기’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 최대 커뮤니티 레딧에는 “대본을 직접 쓰고 목소리만 음성 합성을 사용했는데 ‘재사용 콘텐츠’ 제재를 받았다”, “직접 자료 조사를 해 영상을 만들었는데 AI 나레이션이라는 이유로 ‘반복적 콘텐츠’ 제재를 받았다”는 후기가 다수 올라오고 있다.
알고리즘 기반 자동 필터링 시스템은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창작자’와 ‘단순 복사형 창작자’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다. 문맥을 파악하지 못하는 봇의 한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2025년 인스타그램에서 무고 계정이 연쇄 정지된 사건에서 보듯, 자동화 시스템은 악의적 무고 행위조차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없다는 문제도 노출되고 있다.
애니메이션 제작 등 AI를 창작 도구로 활용하는 유튜버들은 “명확한 제재 기준과 충분한 소명 절차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유튜브는 AI 사용 여부보다 “콘텐츠가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독창성과 정보 가치”를 핵심 평가 기준으로 설정했다고 밝혔지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 이를 어떻게 판별할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플랫폼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저품질 콘텐츠 제재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기술을 선의로 활용하는 창작자까지 제재하는 오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생태계 교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AI 시대의 창작 자유와 플랫폼 건강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일이 2026년 콘텐츠 산업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