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경제 정책이 글로벌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는 경고가 서울에서 나왔다. 단기적으로 한국에 미치는 직접적인 충격은 제한적이지만, 중장기적으로 달러 체제와 안보 구조까지 흔들릴 수 있어 불확실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마커스 놀랜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은 22일 서울에서 세계경제연구원·포스코 주최로 열린 국제콘퍼런스 연설에서 “지난 80년간 미국이 주도해온 개방적이고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가 트럼프 2기 들어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밝혔다.
수출 감소 vs 자본 유입…두 효과가 ‘상쇄’
놀랜드 소장은 트럼프 경제정책의 핵심을 보호무역·이민단속·연방준비제도(연준) 압박 세 가지로 압축했다. 특히 관세 정책은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됐다”고 지적했으며, 대규모 이민 제한으로 미국 노동력이 예상보다 약 200만 명 감소하면서 경제에 상당한 충격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 대한 영향은 상반된 두 방향에서 동시에 나타난다는 분석이다. 미국 경기 둔화로 한국의 대미 수출은 줄어드는 반면, 미국 내 투자 감소로 자본이 한국 등 제3국으로 이동하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놀랜드 소장은 “이 두 가지가 서로 상쇄되면서 결과적으로 한국에는 거의 순효과가 없다”고 평가했다.
3500억 달러 투자 약속…’이전 문제’ 닮은꼴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일본과 체결한 대규모 투자 협정도 주요 변수로 부상했다. 한국은 약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으며, 이는 GDP 대비 1.5~2% 수준으로 추정된다. 일본은 약 5,500억 달러로 GDP 대비 약 3% 수준이다.
놀랜드 소장은 이 구조가 역사적으로 독일 전후 배상 문제에서 논의된 ‘이전 문제(Transfer Problem)’와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대규모 자본 이전이 환율과 무역 구조 전반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준 정치화·달러 약화…중장기 리스크 더 크다
더 근본적인 리스크는 연준의 독립성 훼손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놀랜드 소장은 “연준이 정치적 압력에 따라 과도하게 금리를 인하할 경우, 단기 경기 부양 이후 인플레이션과 자본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한국이 자본 유입의 반사이익을 볼 수 있으나, 글로벌 금융 불안이 커지는 상황 자체는 부정적이라는 평가다.
장기적으로는 달러 중심의 금융 시스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됐다. 그는 “기술 발전으로 글로벌 투자 포트폴리오 다변화 비용이 낮아지면서 달러의 지위가 점진적으로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 역시 반도체·비료 등 한국 주요 공급망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미국의 동맹 정책 변화는 한국의 안보 환경에도 복잡한 변수를 던지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경제 전문가들은 “정책이 명확하면 기업이 대응할 수 있지만, 계속 바뀌는 상황에서는 불확실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한국 수출의 84%가 직·간접적 관세 영향권에 노출돼 있다는 점에서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