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를 보호하려고 만든 법이 오히려 노동자를 내쫓는 법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현행 기간제법의 구조적 모순을 정면으로 지적하며 노동 개혁 논의에 불을 지폈다.
이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지도부 초청 간담회에서 “노동자를 보호하자는 취지의 법안이 사실상 방치를 강제하는 법안이 돼 버렸다”고 밝혔다. 현행 기간제법은 사업자가 비정규직을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정규직으로 의무 전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년 11개월 고용” 관행…법의 역설
이 대통령은 기업들이 법망을 피하기 위해 1년 11개월 시점에 계약을 종료하는 관행이 정착됐다고 짚었다. 그는 “2년이 지나면 정규직 계약을 해야 한다는 조항만 보면 그럴듯하지만, 현실적으로 고용하는 측에서는 1년 11개월을 딱 잘라 고용하고 절대로 2년 넘게 계약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설계 의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가 크다. 상시 고용 전환을 유도하려던 법이 오히려 비정규직의 고용 기간을 2년 미만으로 제한하는 ‘사실상의 고용 상한선’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규직 노조의 역설…다음 세대는 ‘정규직 불가’
이 대통령은 강한 정규직 노조가 오히려 정규직 신규 채용을 억제하는 역설도 함께 지적했다. “대기업 정규직은 조직이 단단해 권리 확보를 잘해 나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용자 입장에서는 정규직을 절대 뽑지 않는다는 게 상식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다음 세대로 전가된다. 이 대통령은 “기존 정규직이야 자기 위치를 찾겠지만, 자녀들이나 다음 세대는 정규직 자리를 결코 누릴 수 없을 것”이라며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일들이 궁극적으로 노동자의 위상을 약화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해법은 ‘사회적 대타협’…경사노위 복귀 촉구
이 대통령은 근본적 해법으로 노동계의 유연성 양보를 대가로 기업 부담을 강화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제시했다. 또한 민주노총에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를 공식 요청했다.
민주노총은 1999년 2월 경사노위 전신인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이후 현재까지 복귀하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용만 당하고 들러리만 서다 보니 화가 나는 점은 이해한다”면서도 “신뢰가 중요하다. 한번 참여를 적극적으로 고민해 달라”고 당부했다.
미조직 노동자 보호 문제도 주요 의제로 올랐다. 이 대통령은 소상공인에 대한 집단교섭권 허용을 언급하고, 노조 조직률 제고를 위한 정부 차원의 조치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 같은데 방바닥에서 온기를 아직 느낄 수 없다”고 평가하며,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AI 도입에 따른 노동영향평가 의무화,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을 촉구했다. 그는 “AI의 피지컬 도입은 일자리 변화가 아니라 소멸”이라고 강조하며 새로운 노동 위협에 대한 제도적 대응을 요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