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發 지정학적 충격이 한국 가정의 전기요금 고지서를 바꿀 수 있다는 경고가 정부 수장의 입에서 직접 나왔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9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중동 전쟁 여파가 지속될 경우 “3~6개월 뒤에는 전기요금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오는 6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요금 인상이 불가피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시사한 발언이다. 현재 정부는 ‘주의(Warning) 경보 단계’로 상황을 분류하며 즉각적인 위기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으나, 석유·LNG 가격이 안정되지 않으면 요금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러-우 전쟁의 데자뷔…가스값이 전기요금 뒤흔든 구조
김 장관은 이번 사태의 핵심 변수로 천연가스(LNG)를 지목했다.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스값이 많이 뛰면서 전기료 발전원가에 미치는 영향이 컸고, 그게 한전의 누적 적자로 쌓여 국민 부담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당시 문제의 핵심은 계통한계가격(SMP) 구조였다. 가장 비싼 발전원인 가스 발전 가격이 기준점이 돼 전체 전기요금이 결정되는 방식이었고, 이 구조가 에너지 위기를 가계와 산업계 전반으로 전가시켰다. 김 장관은 “이번에는 그런 부담이 그대로 전가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통제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루 1만4000톤 절감…원전·석탄으로 가스 대체
정부의 단기 대응은 LNG 소비 최소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 발전용 LNG 일일 소비량은 약 6만9000톤이며, 정부는 원전 추가 가동과 석탄 일부 활용을 통해 하루 최대 1만4000톤(약 20%)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수요 관리도 병행 추진된다. 현재는 공공기관 차량 2부제 등 권고 수준에 머물고 있으나, 상황이 악화되면 민간 차량 5부제와 기업별 재택근무 권고까지 검토할 수 있다고 김 장관은 밝혔다. 에너지업계에서는 경부하기인 봄철에도 원전 가동률을 높이는 조치가 단행된다는 점에서, 이번 위기 대응의 강도가 예사롭지 않다고 분석한다.
재생에너지 100GW 목표…단기 석탄과 ‘충돌하는 방향성’
중장기 전략으로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제시됐다. 정부는 현재 약 37GW 수준인 재생에너지 설비를 이재명 정부 임기 내 100GW 이상으로 확대해 2035년까지 전체 전력 중 30% 비중을 달성한다는 구상이다. 올해 안에만 약 7GW 이상을 신속 보급해 44.5GW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러나 에너지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중장기 기후 목표와 단기 위기 대응을 위한 석탄·원전 비중 확대 사이의 실질적 트레이드오프를 주목한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이미 70% 상승한 상황에서 코레일·수자원공사 등 공기업들이 한전 직구 대신 대체 전력 구매로 전환하는 현상은, 시장이 장기적 전력 구조 불안정성을 선제적으로 반응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