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은 얇아졌지만, 담배와 복권 지출은 오히려 늘었다. 2025년 가계 소비 통계에서 나타난 역설적인 현상이다.
13일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실질 소비지출은 252만 445원으로 전년 대비 0.4% 감소했다. 실질 소비지출이 뒷걸음친 것은 2020년 코로나19 충격(-2.8%) 이후 5년 만이다.
명목 소비지출은 293만 9,000원으로 1.7%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 2.1%를 반영하면 실제 소비 규모는 줄어든 셈이다.
담배·복권 지출 증가…’즉각적 위안’ 소비 패턴
기호품과 요행성 소비가 동반 증가한 점이 눈길을 끈다. 지난해 실질 담배 소비액은 2만 647원으로 전년보다 2.8% 늘며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19년 이후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복권 지출액도 650원으로 전년보다 4.5% 증가했다. 경기 불확실성과 자산시장 변동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소액으로 기대 수익을 추구하려는 소비자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주거비 부담 등 생활비 압박도 복권 구매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반면 통상 담배와 동반 소비되던 주류는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실질 소비액이 1만 5,097원으로 전년보다 5.3% 감소하며 4년 연속 하락했다. 경제학계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경기 침체기에 나타나는 ‘불황형 소비(recession spending)’의 전형으로 분석한다.
보험 해지·캠핑 열기 식어…미래·여가 소비 위축
미래를 대비하는 성격의 소비는 눈에 띄게 줄었다. 보험료 지출액은 6만 963원으로 전년보다 4.3% 감소했다.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향후 혜택을 받는 보험을 해지하는 사례가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된다.
여가 관련 지출도 쪼그라들었다. 캠핑 및 운동 관련 용품 소비는 4.8% 줄며 2019년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감소로 전환됐다. 여행(-1.6%)과 숙박(-4.5%) 지출도 함께 줄었다. 국가데이터처 관계자는 “국외 여행, 책, 주류 등에 쓰는 지출을 많이 줄였다”고 밝혔다.
교육비(-4.9%)와 가정용품·가사서비스(-6.1%)의 감소도 두드러졌다. 교육비 감소는 학령인구 감소와 자녀를 둔 가구의 비중 축소라는 인구구조 변화가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반려동물 지출 22.3% 급증…홈케어 트렌드도 부상
소비 위축 속에서도 반려동물 관련 지출만큼은 역행했다. 지난해 반려동물 및 관련 용품 지출액은 9,219원으로 전년보다 22.3% 증가하며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 국면에서 정서적 위안의 대상으로 반려동물의 역할이 커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집에서 직접 미용을 해결하려는 수요도 증가했다. 미용실·이발소 등 이미용 서비스 소비액은 3만 170원으로 1.2% 줄었지만, 이미용 기기 지출은 2,047원으로 무려 14.7% 늘었다. 전문 서비스를 줄이고 셀프케어로 전환하는 ‘홈케어 트렌드’가 소비 데이터에 반영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