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가 자유화 정책을 유지해온 지 30년 만에 처음으로 석유 최고가격제를 꺼내 들었다. 미국·이란 전쟁 발발 이후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재돌파하자, 물가 방어를 위한 긴급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3월 13일 오전 2시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L당 1,893.3원으로 전날보다 5.5원 내렸다. 경유 가격은 7.9원 하락한 1,911.1원을 기록했으나, 여전히 휘발유 가격을 웃돌고 있다.
국내 기름값은 지난 10일 최고점을 찍은 후 사흘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같은 날 ICE선물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가 배럴당 100.46달러로 전장 대비 9.2% 급등하며 2022년 8월 이후 3년 7개월 만에 100달러를 다시 넘어서, 향후 추가 상승 압력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유사 공급가에 상한선…소비자 가격과 격차는 170원
정부는 13일 0시부터 정유사의 공급가격 최고액을 보통 휘발유 L당 1,724원, 자동차용 경유 1,713원, 실내 등유 1,320원으로 지정했다. 규제 대상은 정유사의 공급가격으로, 주유소 판매가격에 직접 상한을 두는 방식은 아니다.
현재 전국 평균 휘발유 소비자 가격(1,893.3원)은 정부가 지정한 공급가 상한(1,724원)보다 약 170원 높은 상황이다. 당장의 소비자 체감 효과는 제한적이지만, 정부는 유통 마진에 대한 집중 점검을 병행해 가격 전가를 억제하겠다는 방침이다.
가격 비대칭성·시차 효과…정책 실효성 논란
정부가 이번 정책을 서두른 배경에는 구조적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정유사나 주유소들이 가격을 올릴 때는 빨리 올리고 내릴 때는 천천히 내리는 비대칭성”을 지적하며, 중동 사태 이후 국내 도입 물량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다는 점을 핵심 우려사항으로 꼽았다.
통상 국제유가 변동은 약 2~3주의 시차를 두고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된다. 브렌트유가 100달러를 넘어선 만큼, 이 시차 효과가 본격화될 경우 현재의 하락세가 반전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매점매석 금지·추경 검토…단기 처방의 한계도
정부는 최고가격제 시행과 동시에 매점매석 행위 금지 고시도 발동했다. 최고가격이 지정되면 정유사나 주유소가 공급을 꺼리거나 판매를 기피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사전적 대응이다.
다만 현행법상 사업자 손실은 세금으로 보전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정부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검토 중이다. 유류세 인하 카드도 함께 거론되지만, 재원 마련과 실행까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최고가격제는 기한을 정해 운영하는 일시적 성격의 정책이다.
정부는 향후 중동 상황과 유가 동향을 살펴 2주 단위로 최고가격을 재지정하고, 기름값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내려가면 제도를 철회할 방침이다. 현재 한국의 석유 비축량은 208일치(한국석유공사 2024년 말 기준)로 단기 공급 충격에 대한 완충 여력은 확보된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