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전북 새만금에 9조원을 투입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선언했다. 18조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의 투자 발표지만, 시장에서는 재무 체력에 대한 꼼꼼한 검증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현대차는 2026년부터 112만4000㎡의 새만금 부지에 AI 데이터센터(5조8000억원), 수전해 플랜트(1조원), 태양광 발전 설비(1조3000억원), 로봇·부품 클러스터(4000억원), AI 수소시티(4000억원)를 단계적으로 구축한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7만1000여 명의 고용창출과 16조원 규모의 경제유발 효과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투자 발표 당일인 2월 27일 현대차 주가는 10.67% 급등하며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그러나 자본시장의 열기와는 별개로, 재무 구조를 들여다보면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금 18조, 그러나 차입 175조의 이중 구조
단기 유동성 지표만 놓고 보면 현대차의 재무 여력은 일정 수준 확보돼 있다. 2025년 말 기준 연결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8조3600억원이며, 연간 매출 186조원·상각전영업이익(EBITDA) 16조8000억원 규모의 외형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같은 시점 연결 총차입금은 약 175조4000억원에 달한다. 부채총계(241조1966억원)를 자본총계(127조6482억원)로 나눈 부채비율은 약 189%로 전년 대비 상승했다. 현금성 자산을 제외한 순차입금은 약 157조원이다. 연결 재무제표에 금융사업 부문 차입이 포함된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지만, 전반적인 레버리지 수준이 낮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영업현금흐름 마이너스…차입으로 자금 보전
현금흐름 구조에서도 부담이 드러난다. 2025년 말 연결 영업활동현금흐름은 -5조9913억원으로 순유출 상태를 기록했다. 영업으로 벌어들인 현금은 1조9596억원에 불과했지만, 이자 지급(7조36억원)과 법인세 납부(3조5155억원)가 이를 크게 웃돌았다.
현대차는 이 자금 부족분을 재무활동으로 메웠다. 지난해 재무활동에 따른 순현금 유입은 15조4248억원이며, 이 중 장기차입금·사채 발행 규모만 72조7513억원에 달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신규 대형 투자 집행 시 추가 차입 의존도를 높이는 구조적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변수는 총액이 아닌 ‘집행 속도’
현대차는 올해 잉여현금흐름(FCF) 가이던스를 -1조원에서 5000억원 범위로 제시했다. 9조원 프로젝트는 지난해 EBITDA의 절반을 넘는 규모로, 자금이 단기간에 집중 집행될 경우 순차입금이 160조원대 후반으로 확대되고 순차입금/EBITDA 배수도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투자가 수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집행될 경우 연간 부담은 1조~2조원 수준으로 분산되어 기존 현금창출 범위 내에서 관리가 가능하다는 시나리오도 병존한다. 재무 전문가들은 투자 타당성의 핵심 변수가 총액이 아닌 집행 속도와 자금조달 방식이라고 분석한다.
현대차는 재무 부담 완화를 위해 산업은행 및 국민성장펀드와의 협의를 통해 투자 리스크를 분산하고, 정부 부처·전북특별자치도의 인허가 및 인프라 지원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결국 이번 새만금 프로젝트의 재무적 실현 가능성은 정책금융 지원의 규모와 속도에도 상당 부분 달려 있다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