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가 1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법정에 섰다. 청소년의 SNS 중독 유해성을 다투는 재판의 증인석이었다. 감색 정장 차림의 그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13세 미만 아동의 이용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자사의 청소년 보호 정책을 옹호했다. 하지만 원고 측 변호사가 꺼내 든 2018년 내부 발표 자료는 달랐다. “청소년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려면 10~12세 사이부터 끌어와야 한다”는 저커버그의 과거 발언이 공개되며 법정 공방은 격화됐다.
이번 재판은 메타를 포함한 플랫폼 기업을 대상으로 한 수천 건 소송의 향배를 가를 ‘선도재판’이다. 원고인 케일리(20)는 10년 이상 SNS 중독으로 불안과 우울증, 신체장애를 겪었다고 주장한다. 전 세계적으로 청소년 SNS 규제가 급물살을 타는 시점에서, 이 재판의 결과는 업계 전체의 책임 범위를 재정의할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법정에서 드러난 메타의 딜레마
재판의 핵심 쟁점은 명확하다. 플랫폼 기업이 청소년을 SNS에 묶어두기 위해 의도적으로 알고리즘을 설계했는지 여부다. 원고 측 마크 레니어 변호사는 “SNS 기업은 이용자가 중독돼야 이윤이 남기 때문에 일부러 유도하는 설계를 했다”고 주장했다. 닉 클레그 전 부사장이 경영진에게 보낸 메시지도 증거로 제출됐다. “우리는 시행되지 않는 연령 제한을 두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저커버그는 이에 강하게 반박했다. “앱 개발사는 사용자 연령을 확인하기 어렵고, 책임은 모바일 기기 제조사에 있다”며 “내 발언을 왜곡하고 있다”고 맞섰다. 과거 앱 이용 시간 증대 목표를 제시한 2014~2015년 이메일에 대해서는 “이후 접근 방식을 바꿨다”고 해명했다. 메타 측 폴 슈미트 변호사는 케일리의 정신건강 문제가 SNS가 아닌 불안정한 가정생활에서 비롯됐다는 의료 기록을 제시하며 인과관계에 의문을 제기했다.
전 세계로 확산되는 청소년 SNS 금지 물결
이번 재판이 주목받는 이유는 글로벌 규제 강화 추세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호주는 2025년 12월 16세 미만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등 10개 SNS 이용을 전면 금지했다. 플랫폼이 기존 계정을 삭제하지 않으면 최대 4950만 호주달러(약 485억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유럽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프랑스와 덴마크는 15세 미만 SNS 금지 법안을 추진 중이며, 스페인은 16세 미만 금지와 함께 연령 확인 도구 의무화를 검토하고 있다.
체코의 안드레이 바비시 총리는 2026년 초 15세 미만 SNS 금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고, 영국은 무한 스크롤 같은 중독성 디자인 폐지를 검토 중이다. 한국은 다소 신중한 입장이다. 과거 2011년 도입된 ‘셧다운제’가 실효성 논란 끝에 폐지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대신 다음 달인 3월부터 전국 초·중·고교에서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플랫폼의 책임, 어디까지인가
메타는 최근 청소년 보호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수 주 내에 청소년의 AI 캐릭터 채팅 서비스를 전면 차단하고, 2024년부터 자해 검색 차단과 성인용 콘텐츠 제한을 시행 중이다. 하지만 2025년 5~6월 인스타그램에서 발생한 ‘계정 정지 대란’은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청소년 보호와 무관한 일반 계정이 대량으로 영구 정지되면서 한국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지난 2월 11일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여부 조사에 착수했다.
신중론 진영에서는 “플랫폼 전면 금지보다는 알고리즘 책임 강화, 연령 확인 기술 도입,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확대가 현실적 대안”이라고 조언한다. 실제로 2026년 2월 5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간담회에서 청소년들은 SNS 중독과 유해 콘텐츠 문제에는 공감했지만, 이용시간 강제 제도에는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번 선도재판의 판결은 메타뿐 아니라 유튜브, 틱톡 등 모든 플랫폼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유튜브는 “우리는 넷플릭스 같은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일 뿐 SNS가 아니다”라며 선을 긋고 있고, 스냅챗과 틱톡은 재판 전 원고와 합의했다. 저커버그가 법정에서 강조한 “모바일 기기 제조사의 책임”론이 받아들여질지, 아니면 플랫폼의 설계 책임이 인정될지에 따라 향후 수천 건의 소송과 글로벌 규제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청소년 보호와 표현의 자유, 기술 혁신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사회적 합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