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전 역사상 첫 해체 시작
500조 원 규모 글로벌 시장 진출 기회
12년간 1조 원 투입 대규모 작업

“방사선 핵종 ‘탄소14’는 여전히 제대로 없앨 수 없는 과제입니다.” 원자력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지적하는 원전 해체의 가장 큰 난제 중 하나다.
이제 한국은 반세기에 이르는 원자력 산업 역사상 처음으로 이 과제에 도전하게 됐다. 새로운 기술의 실전 무대가 열리며 글로벌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할 시간이 온 것이다.
최초의 도전, 12년 대장정 시작
국내 최초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40년간의 운영을 마치고 해체 절차에 본격 착수한다. 2017년 6월 영구 정지된 지 8년 만이다.

26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제출한 고리1호기 해체 계획서를 심의·의결하고 원전 해체의 최종 승인했다.
한수원은 향후 12년에 걸쳐 고리 1호기를 단계적으로 해체하고 원전 부지를 복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체 사업은 크게 해체 준비, 주요 설비 제거, 방사성폐기물 처리 및 부지 복원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한수원은 다음 달부터 터빈 건물 내 설비, 복수탈염 설비, 옥외탱크 등을 순차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2031년까지는 사용후핵연료 반출을 완료하고, 2035년에는 부지 복원에 착수해 2037년에 최종적인 해체를 종료할 계획이다.
이러한 철저한 단계별 접근은 안전성 확보와 기술력 축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전략이다.
기술 자립으로 새 시장 개척
이번 해체 작업은 단순한 원전 설비 철거를 넘어 국내 원전 생태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한국이 원전의 건설과 운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 주기 생태계를 완성하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수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이미 96개 해체 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핵심기반 기술 38개를, 한수원이 상용화 기술 58개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준비는 국내 원전 해체 역량을 다지는 것은 물론,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원전 해체 시장은 미국과 프랑스 등 소수 국가가 독점해 온 분야”라며 “세계 원전 대부분이 고리 1호기와 같은 가압경수로여서 이번 작업이 기술 축적의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500조 원 블루오션 도전장
이렇게 축적된 기술과 경험은 곧 글로벌 시장 진출의 교두보가 될 전망이다. 한수원은 영국 원자력해체청, 프랑스 ORANO, 캐나다 키네트릭스 등 해외 전문기관과의 교류도 활발히 진행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원전 해체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기회가 크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에 영구 정지된 원전은 209기에 달하지만, 이 중 해체가 완료된 것은 21기에 불과하다.
IAEA는 2050년까지 총 588기의 원전이 영구 정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원전 해체 기술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특히 글로벌 시장 규모가 500조 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원전 해체 산업에 한국이 본격적으로 뛰어들 기회를 맞게 됐다.
미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일부 국가만이 원전 해체에 나섰으며, 이 중에서도 해체를 완료한 사례는 미국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범경 원자력연 원자력시설청정기술개발부장은 “미국은 방폐물을 사막에 묻을 수도 있어 처리 기술이 거의 없는 반면, 한국은 좁은 국토와 까다로운 주민 수용성 문제로 방폐물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런 특수성이 오히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