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을 ‘안다’고 답한 국민이 10명 중 9명에 달하지만, 실제로 쓰는 사람은 3명에 불과하다. 아는 것과 쓰는 것 사이, 그 54%포인트의 간극은 무엇을 뜻하는가.
한국소비자원은 5월 8일, 2025년 수행한 ‘AI 소비행태 조사 연구’와 ‘2025 한국의 소비생활지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국 권역별 디지털·AI 소비 행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 1만 3,000명 규모의 대형 표본 조사로, 생성형 AI 확산 이후 처음 실시된 국가 단위 소비 실태 진단이다.
아는 것과 쓰는 것, 54%포인트의 간극
응답자의 86.8%가 AI를 ‘알고 있다’고 답했다. 동남권이 88.8%로 가장 높았고 수도권 87.1%, 호남권 81.4% 순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AI를 일상과 업무에 ‘중요하게 활용한다’는 응답은 전국 평균 32.3%에 그쳤다. 활용률이 가장 높은 수도권조차 34.5%에 머물렀다. AI 제품·서비스를 구매해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75.3%였지만, 이 역시 ‘구매’와 ‘실질적 활용’은 다른 차원이다. 소비자들이 AI를 인식하고 경험하면서도 일상에 녹여내지 못하는 ‘활용 정체’ 현상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호남권, 인지부터 결제까지 ‘이중 소외’
지역별 격차는 단순한 수치 차이를 넘어 구조적 불균형을 시사한다. 호남권은 AI 인지율(81.4%), 활용률(28.2%), AI 제품 구매 경험(69.5%) 모두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다.
디지털 결제 수단(카카오페이·삼성페이 등) 이용률에서 격차는 더욱 선명해진다. 수도권은 56.4%인 반면 호남권은 28.4%로, 무려 약 2배의 차이가 났다. 전자상거래 전체 경험률(전국 73.1%)과 비교해도 호남권의 디지털 금융 접근성이 뚜렷하게 낮음을 알 수 있다. AI 소외와 디지털 결제 소외가 동시에 나타나는 ‘이중 소외’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주의 역설, 정책이 격차를 바꾼다
주목할 만한 예외가 있다. 제주는 디지털 소비 여건 신뢰도(65.8점)에서 수도권(66.4점)에 이어 전국 2위를 기록했고, 디지털 보안 사고 대응·이의 제기 역량에서는 68.7점으로 전국 1위에 올랐다.
한국소비자원은 제주시가 디지털 역량 격차 해소를 위해 운영 중인 거점센터가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인프라가 아니라 ‘정책 의지’가 격차를 좁힌 실증 사례다. 이 모델은 디지털 소외가 심한 타 지역에도 유효한 해법이 될 수 있다.
AI 인지율 86.8%라는 수치는 디지털 교육과 미디어 노출의 성과다. 그러나 32.3%라는 활용률은 ‘알기는 하지만 내 삶에 필요한지 모르는’ 현실을 드러낸다. 지역 간 격차가 방치될수록 AI 경제의 과실은 수도권 중심으로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거점센터 모델의 전국 확산과 지역 맞춤형 디지털 교육 확대가 시급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