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연속 2조원을 넘어선 임금체불 문제가 보다 정밀한 분석 대상이 된다. 고용노동부는 3일 임금체불 통계 지표를 기존 3개에서 11개로 대폭 확대한다고 밝혔다. 2026년 1월 통계부터 적용되며, 이달 초 노동포털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2025년 임금체불액은 2조679억원으로 전년(2조448억원) 대비 증가세를 이어갔다. 피해 노동자는 26만2304명으로 7.4% 줄었지만, 1인당 체불액은 오히려 늘어난 셈이다. 이는 총액 중심 통계만으로는 노동시장 내 체불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온 배경이다.
특히 한국의 체불 규모는 국제적으로도 심각한 수준이다. 2024년 기준 일본은 907억원, 미국은 2980억원에 그쳤지만, 한국은 이들의 몇 배에 달한다. 노동부 관계자는 “한국 특유의 ‘몇 달 뒤 주겠다’는 관행과 회사를 먼저 살리려는 사회적 인식이 체불을 키우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상대적 지표로 노동시장 체질 진단
이번 통계 개편의 핵심은 ‘상대적 지표’의 신설이다. 기존에는 체불 총액, 청산액, 피해 노동자 수 등 절대값만 발표했지만, 앞으로는 임금체불률(임금 총액 대비 체불액 비율)과 체불노동자 만인율(임금 노동자 1만명당 피해자 수)도 함께 공개된다. 이를 통해 노동시장 규모 변화에 따른 체불의 실질적 증감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금품별(임금·퇴직금), 업종별, 규모별, 국적별, 지역별 세부 현황과 체불사건 처리 결과도 공개 대상에 포함됐다. 노동부는 조사 완료 후 확정된 금액만 집계해 기존 통계의 3~5% 수준이던 중복 집계 문제도 해소한다는 방침이다. 청산액은 ‘체불 피해 해결액’으로 용어를 바꿔 국가 대지급금까지 포함된 의미를 명확히 할 계획이다.
제조·건설업 공개에 ‘낙인효과’ 우려
세부 통계 공개를 두고 업계에서는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025년 기준 제조업(6146억원·29.7%)과 건설업(4165억원·20.1%)이 전체 체불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만큼, 구직자들이 해당 업종을 기피하면서 건실한 기업까지 인력난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다.
이에 대해 김태연 노동부 근로감독기획과장은 “제조업, 건설업 등 대분류 수준으로만 공개하고, 업종별 경향성이 크게 다르지 않아 낙인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체불이 심한 기업으로의 취업을 피하도록 유도하는 정책과도 부합한다는 입장이다.
경영악화 60%…구조적 원인 파헤친다
노동부는 체불 발생 원인도 정밀 분석에 나선다. 그간 ‘일시적 경영악화’가 60% 이상을 차지했지만, 이를 ‘일시적 경기 영향’, ‘사업소득 미발생’, ‘도산·폐업’ 등으로 세분화해 구조적 부실과 경기 순환적 변동을 구분한다는 계획이다. 체불 정보와 기업 소득 정보를 연계한 연구용역을 통해 분석 결과를 연 1회 발표하고, 원인별로 정책 대상을 타겟팅하는 방식이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사업장 전수조사 등을 통해 ‘숨어있는 체불’을 선제적으로 찾아내고, 임금 구분지급제와 체불 사업주 법정형 상향 등 법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2030년까지 체불액을 현재의 절반인 1조원 수준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통계 확대가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이어질지, 그리고 한국 특유의 체불 관행을 바꿀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