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려 일군 텃밭이 개인 마트?… 하룻밤 새 쑥대밭 된 주말농장

댓글 0

상추 절도 현장을 조사 중인 경찰 / 연합뉴스

두 달 넘게 이틀에 한 번씩 물을 주며 키운 상추 30포기가 하룻밤 새 뿌리째 뽑혔다. 남은 건 10여 포기의 잔해와 흙이 푹 패인 흔적뿐이었다.

지난 15일, 서울 동대문구 중랑천변 ‘도시농업 체험학습장’에서 40대 여성 A씨가 마주한 현실이다. A씨는 2년의 대기 끝에 올해 3월 약 4.5㎡(1.3평)의 텃밭을 배정받아 상추·고추·가지를 심었다. 그가 공들여 일군 ‘소확행’의 공간은 한순간에 누군가의 ‘개인 마트’가 됐다.

927개 필지, 지키는 눈은 없다

피해는 A씨에 그치지 않는다. 인근에서 텃밭을 가꾸던 고씨(53)도 일주일 전 심어둔 깨 모종 여러 개를 삽으로 통째로 잃었다. 동대문구청에는 한 달 새 절도 관련 민원이 5~10건 접수됐고, 구청 관계자는 “올해 유독 건수가 많다”고 털어놨다.

문제의 핵심은 구조다. 이 텃밭은 총 927개 필지 규모의 광활한 개방형 공간이다. 산책로·자전거도로와 바로 맞닿아 있어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지만, 전체를 비추는 CCTV는 인근 장안교에 달린 1~2대가 전부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강력계 형사들이 수사에 나섰지만, 범인 특정은 난항을 겪고 있다. 증거 자체가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상추 절도 기승
반 이상 뽑힌 상추 / 연합뉴스

‘서리’라 부르지만, 법은 징역 6년까지 처벌한다

‘서리’라는 단어에는 아직도 농촌의 낭만적 기억이 묻어 있다. 하지만 공공 도시텃밭은 이용자가 분양 절차를 밟고 계약한 엄연한 재산권 공간이다. 상추 몇 포기, 깻잎 한 장이라도 형법 제329조 절도죄가 성립하며, 최대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피해액이 소액이고 초범인 경우 통상 벌금형이나 기소유예로 마무리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다수이거나 반복 범행이 확인될 경우 상습절도로 가중 처벌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설마’라는 안일한 인식이 범행을 부추기지만, 법의 눈은 그보다 훨씬 엄정하다.

채소값 공포가 만든 씁쓸한 민낯

도시 텃밭 절도가 유독 기승을 부리는 배경에는 치솟은 식탁 물가가 자리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동 분쟁 등 국제 정세 불안이 공급망을 흔들며 신선식품 가격이 들썩이는 가운데, “장보기가 두려운 현실”이 소액 식료품 절도의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학 전문가들은 이 같은 소액 범죄 증가를 단순한 도덕적 해이로만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상대적 박탈감과 생활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약한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를 개인의 일탈로만 환원하면, 구조적 대응의 기회를 놓친다.

절도 금지 포스터 / 연합뉴스

구청은 뒤늦게 ‘절도 금지’ 현수막을 내걸고 순찰을 강화했으며, CCTV는 내년 예산 편성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927개 필지에 카메라 1~2대, 사후 현수막 한 장이 답이 될 수 없다. 도시농업이 공공 복지 인프라로 자리 잡은 만큼, 방범 투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누군가의 2년 기다림이 하룻밤 절도로 무너지지 않으려면, 지자체의 구조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Copyright ⓒ 이콘밍글.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