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병원에 주사기가 없다니…’나프타 쇼크’, 동물 의료 현장까지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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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 주사기 부족
진료받는 반려견 / 연합뉴스

1만 원짜리 주사기 한 박스가 5만 원이 됐다. 단골 동물병원에서는 “팔 물량이 없다”는 말만 돌아온다. 중동發 나프타 쇼크가 이제 반려동물의 생명줄을 위협하고 있다.

14일 대한수의사회와 의료업계에 따르면 최근 나프타 가격 급등으로 폴리프로필렌(PP) 등을 원료로 하는 주사기와 수액팩 공급가가 평소 대비 3~4배, 일부 품목은 최대 8배까지 치솟았다. 동물병원들이 보유한 재고는 현재 2주에서 1개월치에 불과한 상황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불러온 나비효과

이번 사태의 출발점은 중동 전쟁 장기화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는 올해 1월 톤당 595달러에서 4월 들어 1,100달러를 넘어섰다. 불과 석 달 사이에 두 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나프타는 ‘산업의 쌀’로 불린다. 이 원료에서 뽑아낸 에틸렌과 프로필렌은 주사기, 수액팩, 비닐봉투, 자동차 외장재까지 현대 산업 전반에 쓰인다. 국내 폴리에틸렌(PE) 가격은 2월 톤당 157만 원에서 현재 230만 원을 넘어섰고, PP 필름은 열흘 만에 40% 이상 뛰었다.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대형 업체들이 고객사에 주요 소재 공급 어려움을 공식 통보한 상황이다.

정부, 주사기·수액팩 공급 대응 나선다 - 뉴스1
정부, 주사기·수액팩 공급 대응 나선다 / 뉴스1

동물병원의 민낯…재고 바닥, 진료비 인상 압박

동물병원 현장은 이미 비상이다. 수의사 A씨는 “기존 업체에서 받던 1cc 주사기가 동났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비싼 값을 치르고서라도 물량을 확보하려 하지만, 재고가 언제까지 버텨줄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소규모 동물병원 일부에서는 특정 제품 재고가 이미 바닥난 것으로 확인됐다.

수급 불안은 곧바로 진료비 인상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물병원 B는 최근 공지를 통해 “소모품 공급가 급등으로 주사·수액 처치비와 입원비를 한시적으로 부과한다”고 밝혔다. 그간 별도 청구하지 않던 항목들이 새로운 비용으로 추가된 것이다.

노령 반려동물 보호자들 직격탄…정부, 뒤늦은 대응

동물병원 주사기 부족
주사기 매대가 비어 있는 서울의 한 의료기기 판매점 / 연합뉴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집에서 매일 주사기와 수액을 사용해야 하는 당뇨·신부전 노령견·노령묘 보호자들이다.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사기를 대량 구매할 수 있는 판매처 정보를 공유하며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1만 원 하던 주사기 한 박스가 5만 원이 됐다”, “단골 병원에서도 팔 물량이 없다고 한다”는 하소연이 줄을 잇는다.

정부와 수의사회도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한수의사회는 지난주 초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하고 자회사 한수약품을 통해 확보한 물량을 긴급 배분하는 한편, 해외 제품의 신속한 수입 허가를 위해 당국과 협의 중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의료기기 매점매석행위 금지 고시’를 발령해 주사기 4종과 주사침 3종의 폭리 행위를 엄단하기로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도 관계기관 간담회를 열고 반려동물용 의료제품 수급 동향 점검에 나섰다.

다만 업계의 우려는 다른 곳을 향한다. 의료업계 관계자는 “정부 조치로 수급 경색이 풀릴 것을 기대하지만, 사람 의료 분야에만 물량이 집중돼 동물병원이 소외되지 않도록 세심한 배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 원자재 충격이 반려동물 의료 현장까지 뒤흔드는 지금, 정부의 촘촘한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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