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cm 두께의 육중한 금고 문이 열리자 노란색 압류 스티커가 붙은 명품 가방들이 빼곡히 들어찬 수장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3천500만원대 에르메스 켈리백과 2천만원대 버킨백, 수천만원짜리 롤렉스 시계, 그리고 유명 작가들의 예술 작품까지. 국세청이 26일 유튜브를 통해 최초 공개한 서울지방국세청 압류 물품 보관소는 고급 백화점 명품관을 방불케 했다.
국세청은 고액·상습 체납자들로부터 압류한 명품 492점을 다음 달 두 차례에 걸쳐 온라인 공매로 내놓는다. 이번 공매는 단순한 물품 매각을 넘어 “세금은 내지 않으면서 수억원대 명품을 은닉하는” 고액 체납자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운영 중인 ‘고액체납자 추적 특별기동반’은 124명을 추적해 현금 13억원, 현물 68억원 등 총 81억원 상당을 압류하는 성과를 거뒀다.
시작가 절반 이하, 압류 명품의 파격 경매
공매 물품의 가격 책정이 주목을 끈다. 추정가 3천200만~6천만원인 롤렉스 데이데이트는 시작가가 2천만원, 800만~2천300만원 상당의 에르메스 버킨 35는 650만원부터 입찰이 가능하다. 시장가 대비 낮은 가격으로 시작하는 셈이다. 1차 공매는 3월 11일 진행되며 명품 가방·지갑 35개, 고급 시계 11개, 예술품 9점, 고급 와인 110병 등 총 166점이 출품된다. 줄리안 오피와 쿠사마 야요이 같은 유명 작가의 작품도 900만원 시작가로 만나볼 수 있다.
3월 6~10일에는 서울옥션 강남센터 지하 1층에서 실물 전시가 열려 직접 확인할 수 있다. 2차 공매는 3월 25일 진행되며 326점이 추가로 출품된다. PC나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입찰 가능하지만, 국세공무원과 그 가족은 참여가 제한된다.
조세 정의 실현, 은폐 자산 추적의 신호탄
이번 공매가 특별한 이유는 국세청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이기 때문이다. 박해영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은 “고액 체납자가 값비싼 물건을 숨겨 보유해 온 행태에 대해 엄정히 대응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압류 물품 수장고를 유튜브로 공개하고, 대규모 전시까지 여는 것은 국세청 역사상 처음이다.
실제로 압류된 물품 중에는 발렌타인 30년산 같은 고가 위스키, 황금 거북이 같은 귀금속, 비상장주식 주권까지 다양했다.
판매금 국고 환수, 국민 재원으로 활용
공매를 통한 판매 대금은 전액 국고로 귀속되어 국민을 위한 재원으로 쓰인다. 임광현 국세청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조세 정의 실현에 참여하는 의미와 함께, 여러 물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만나보실 수 있다”며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국세청은 압류 물품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미술품은 훼손 방지를 위해 외부 전용 수장고에, 리차드밀과 롤렉스 같은 고가 시계와 귀금속은 수장고 내 별도 금고에 보관한다.
“돈이 있어도 사기 어렵다”는 에르메스 버킨백을 시장가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탈세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세청의 이번 압류품 공매는 고액 체납자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이자, 조세 정의를 실현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81억원 규모의 은폐 자산 적발은 시작에 불과하며, 앞으로도 고액·상습 체납자에 대한 추적은 계속될 전망이다. 공정한 사회를 향한 이 같은 노력이 성실 납세 문화 정착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