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14년 만에 제네릭(복제약) 약가제도를 전면 개편했다. 그러나 개편안이 발표되자마자 환자·소비자 단체들의 거센 반발이 쏟아졌다. 인하 폭은 작고 유예 기간은 너무 길다는 것이 핵심 이유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26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국민건강보험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심의·의결했다. 현재 오리지널 약값의 53.55% 수준인 제네릭 기본 가격 산정률을 최종 45%까지 낮추는 내용이 핵심이다.
인하 폭보다 긴 유예 기간…”사실상 무기한 지연”
문제는 속도와 예외 규정이다. 정부안은 2026년 하반기 1차 조정을 거친 뒤 향후 10년간 단계적으로 산정률을 조정하기로 했다.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높은 혁신형 기업은 최대 4년간 49%의 산정률을 적용받는다.
한국소비자연맹 등 4개 단체가 참여하는 의약주권 환자·소비자연대는 “10년의 유예 기간은 시장 구조 개편을 사실상 무기한 지연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암환자단체 등이 속한 한국중증질환연합회도 “‘준혁신형 제약기업’이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상당수 기업에 최대 7년 이상 유예를 주는 것은 제약업계 이해관계만 반영한 미온적 조치”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신약 등재 100일 단축, 약인가 독인가
이번 개편안에는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등재 기간을 현행 최대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단축하는 내용도 담겼다. 신약 허가 후 급여까지 평균 18개월이 걸려 일본(약 3개월)의 6배에 달하는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정부가 현행 검증체계를 모두 삭제하고 아무 신약이나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했다”며 치료 효과성 검증 부족을 지적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40여 개 단체가 참여하는 무상의료운동본부는 “효과가 불분명한 약이 검증 없이 건강보험에 오르고,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2024년 국내 약품비는 26조 9,114억원으로 2017년 대비 62.1% 증가했다. 이미 재정 부담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검증 절차까지 간소화하면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가속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령 제약사’와 리베이트…약가 인하만으론 역부족
전문가들은 약가 인하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불공정한 리베이트 관행을 지목한다. 한국의 제네릭 약가는 OECD 평균의 2.17배 수준으로, 단순히 가격 기준을 낮춘다고 해서 시장의 거품이 걷히지 않는다는 논리다.
의약주권 환자·소비자연대는 “실질적인 품질 경쟁 없이 리베이트 영업으로 처방 시장을 잠식하는 ‘유령 제약사’들이 진짜 문제”라며, 생산 역량 없는 제약사 퇴출 기준 마련을 촉구했다. 권용진 정책위원장은 “공정거래위원회·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함께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하지 않는 제약사의 위탁생산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위탁제조 의존도는 62%에 달한다.
정부는 이번 개편으로 연간 1조 1천억~2조 4천억원의 건강보험 재정 절감과 소비자 본인부담금 약 16% 감소를 기대한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예외 규정을 줄이고 리베이트 근절과 제약 산업 구조 개혁을 동시에 추진하지 않는 한, 이번 개편이 숫자만 바꾼 ‘반쪽짜리 처방’에 그칠 것이라고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