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실직자 3년 7개월 만에 최대
일자리 찾는 기간 평균 6개월로 늘어
IT·제조업 일자리는 오히려 감소세

“기업들이 급여 줄이기 시작하면 실업률이 훨씬 빠르게 오를 수 있습니다.” 씨티그룹의 베로니카 클라크 이코노미스트가 내놓은 경고는 미국 경제의 불안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에서 일자리를 잃은 후 재취업하지 못하는 장기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고용시장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장기 실업자 급증, 채용은 감소
미 노동부가 12일(현지시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주 이상 실업수당을 신청한 ‘계속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5월 말 기준 195만 6천 건으로 직전 주보다 5만 4천 건 증가했다. 이는 2021년 11월 이후 3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의 4주 이동평균은 24만 250건으로, 2023년 8월 이후 약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수치는 미국 경제가 팬데믹 이후 활황기에서 벗어나 점차 둔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장기 실업자의 증가는 미국 경제의 체질 변화를 나타내는 현상이기도 하다. 지난 1월 미 노동통계청에 따르면 구직자들의 평균 취업 소요 기간도 약 6개월로, 코로나19 팬데믹 직후보다 한 달가량 늘어났다.
6개월 이상 구직활동을 하는 장기실업자는 2022년 이후 50% 이상 증가해 160만 명을 넘어선 상태다.

IT·금융 등 사무직 타격 심각
특히 눈에 띄는 것은 IT와 금융 등 고임금 사무직의 어려움이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IT 산업 채용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2월 3.1%에서 지난해 10월 2.3%로 줄었다. 같은 기간 금융업 비중도 2.6%에서 2.0%로 감소했다.
아마존,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이 지난해부터 AI를 활용하면서 중간관리자 감원에 나서고, 이로 인해 고용 감소 추세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고용정보업체 인디드는 소프트웨어 개발, 데이터 과학 및 마케팅 채용 공고가 팬데믹 이전보다 20% 이상 감소했다고 밝혔다.
금융권에서도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다. 지난해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릿지워터어소시에츠는 전체 인력의 7%를 감원한다고 발표한 바 있으며, 투 시그마 인베스트먼트와 브레드하워드 자산운용도 지난해 각각 인력의 10%를 감축했다.
정부·의료 일자리가 실업률 지탱
전문가들은 미국의 실업률이 4.2%로 비교적 낮게 유지되는 현상을 정부와 의료 부문의 채용 증가세가 다른 산업의 감소세를 상쇄한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까지 1년간 미국의 순 신규 일자리 227만여 개 중 96만 개(42.2%)가 사교육 및 의료, 49만 개(21.5%)가 정부 부문에서 창출됐다.
반면 IT와 제조업 분야에서는 각각 13만 개와 6만 1천 개의 일자리가 감소했다.

미국 노동부는 지난 5월 비농업 일자리가 전월 대비 13만 9천 명 증가했으나, 이는 최근 12개월 평균 증가폭(14만9천 명)보다 낮은 수치라고 발표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직종을 전환하는 비율도 크게 늘었다. 채용상담업체 집리크루터의 줄리아 폴락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하반기 신규 채용 직원의 절반 이상이 취업을 위해 직종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경기 침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월가에서는 실물경제 동향을 가늠할 수 있는 고용시장 지표에 주목하고 있다.
고용시장 악화가 본격적인 실업률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