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주택담보대출 없이 현금으로만 집을 사는 거래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강남권에서는 대출 비중이 30% 아래로 떨어지며, 자금력을 갖춘 매수자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20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2026년 1월 소유권이전등기가 완료된 서울 집합건물(아파트·오피스텔 등)의 거래가 대비 채권최고액 비율은 평균 42.96%를 기록했다. 이는 2019년 12월(41.82%) 이후 약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채권최고액 비율은 금융기관이 주택담보대출 실행 시 설정하는 담보 한도로, 은행권은 실제 대출금의 110~120%를 설정하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대출 활용 규모는 더욱 축소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변화는 2025년 10월 15일 발표된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10·15 대책’)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정부는 주택 가격대별로 주담대 한도를 차등화했는데, 15억원 이하는 6억원, 15억 초과~25억원은 4억원, 25억원 초과는 2억원으로 상한을 설정했다. 이로 인해 고가 주택 매수자들은 대출 대신 현금 동원에 나서야만 했다.
강남 3구, 대출 비중 30%대 진입…”현금 부자만 살 수 있다”
대출 비중 축소는 고가 주택이 밀집한 강남권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났다. 강남구의 채권최고액 비율은 29.55%로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서초구는 33.98%에서 31.43%로, 송파구는 34.98%에서 32.27%로 하락하며 이른바 강남 3구 전반에서 대출 비중이 30%대로 진입했다.
채권최고액 설정 비율을 감안해 단순 환산할 경우, 15억원대 주택 거래에서도 실제 대출 규모는 수억원대에 그친 사례가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현행 규제상 15억원 초과 주택의 최대 대출 한도(4억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한강변을 포함한 선호 지역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났다. 마포구는 41.10%에서 39.81%로, 강동구는 46.23%에서 41.73%로 하락했다.
외곽은 여전히 50~60%대…”15억원 이하로 쏠림”
반면 상대적으로 중저가 주택 비중이 높은 외곽 지역은 여전히 서울 평균을 웃돌았다. 구로구(60.91%), 도봉구(59.55%), 강북구(59.91%), 금천구(57.86%) 등은 대출 활용 비중이 높았다. 가격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아 실수요자의 레버리지 활용이 불가피한 구조다.
실제로 2026년 2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는 10건 중 9건(87.2%)이 15억원 이하로 집중됐다. 최대 주담대 6억원을 받을 수 있는 가격대로 매수세가 쏠린 것이다. 거래 상위 지역도 노원구(671건), 성북구(395건), 강서구(373건), 구로구(355건) 등 중저가 아파트 밀집 지역이 차지했다. 이는 ’10·15 대책’ 직후인 2025년 10월 64.6%에서 불과 4개월 만에 20%p 이상 급증한 수치다.
30대 생애 첫 매수자 폭증…”주거 사다리 붕괴 우려”
흥미롭게도 이러한 대출 비중 하락은 30대 생애 첫 매수자 폭증과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2025년 전체 생애 최초 등기 건수 6만1161건 중 30대가 3만482건(49.84%)을 차지하며 2010년 통계 공개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2026년 1월에도 53.7%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를 정책대출(신혼부부 주택구입자금, 신생아 특례 디딤돌 대출)이라는 우회로를 통한 젊은 세대의 전략적 매수로 해석한다. 일반 주담대는 규제되지만 정책대출을 활용해 15억원 이하 중저가 주택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한 30대 매수자는 “집값은 계속 오르고 주변에서 하도 부동산, 부동산 하니까 안 사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심했다”고 토로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대출 규제로 인해 자금 여력이 있는 수요자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시장 구조가 됐다”며 “강남권뿐 아니라 외곽 지역에서도 과거에 비해 대출 비중이 줄어드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모기지는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왔는데, 대출 접근성이 낮아지면서 자금력이 충분한 매수자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측면이 있다”며 “이는 시장 안정과는 별개의 문제로, 장기적으로는 계층 간 자산 격차를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