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 최대 실적을 앞둔 삼성전자가 2년 만에 또다시 노사 갈등의 벼랑 끝에 섰다. 2월 19일 노조 공동교섭단이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을 신청하면서, 2024년 7월 창사 첫 총파업 이후 쟁의 재발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올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245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18년 역대 최고 영업이익(58조 9천억원)의 4배를 초과하는 수치다. SK하이닉스 역시 179조원의 영업이익이 예상되며, AI 인프라 확장에 따른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급증이 호황의 배경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호황이 노사 충돌의 도화선이 됐다.
SK하이닉스 2964% 성과급이 만든 새 기준
갈등의 핵심은 성과급 산정 방식이다. 삼성전자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초과이익성과급(OPI)을 영업이익의 20%로 책정하고, 연봉의 50%로 제한된 성과급 상한을 폐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기존 EVA(경제적부가가치) 기준 유지와 실적 신기록 달성 시 추가 보상을 제시했으나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노조 요구의 배경에는 SK하이닉스의 선례가 자리한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벼랑끝 대치’ 끝에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고 상한을 폐지하는 데 합의했다. 그 결과 올해 초 직원들에게 기본급 대비 2964%의 성과급이 지급됐다. 1인당 평균 1억원 이상의 인센티브가 현실화되자,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는 4개월 만에 조합원을 9배 증가시켜 6만 616명을 확보했다. 과반 기준 6만 2500명을 1884명 앞두고 있다.
비용 경직화 우려 vs 공정 분배 요구
재계와 금융투자업계는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의 고정화가 비용 구조를 경직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메리츠증권 김선우 연구원은 “‘영업이익 10% 보너스’ 정책은 주주 입장에서 급격한 비용 증가로 인식될 수 있다”며 주주총회에서 환원 요구가 커질 가능성을 지적했다.
반도체 산업은 업황 변동성이 큰 대표적 경기민감 산업이다. 호황기에 현금을 축적해 불황기 설비 투자와 R&D에 대비하는 재무 전략이 중요한데, 인건비가 고정 비용화되면 장기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미 삼성전자 직원 평균 연봉은 지난해 1억 5천만원을 넘어서며 전년 대비 20% 가까이 증가했다.
여기에 대법원이 목표 인센티브를 퇴직금 산정 기준에 포함해야 한다는 판례를 확립하면서, 과거 낮은 성과급을 받은 퇴직자들의 재산정 소송도 이어지고 있다. 성과급 구조 변화가 과거 부채로 작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인재 전쟁 속 균형점 찾기
노사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빅테크의 공격적 인재 확보 경쟁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론 머스크가 직접 한국 AI 칩 엔지니어 채용에 나섰고, 엔비디아는 연봉 4억원 수준과 주식 보상을 조건으로 HBM 전문가를 모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실적 호황과 보상 확대 요구, 주주 환원 압박, 인재 유출 가능성이 동시에 맞물린 현 상황을 ‘임계점’으로 진단한다. 단기 성과 분배와 중장기 경쟁력 확보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반도체 업계의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중앙노동위원회 조정 과정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 노사 관계 모델을 결정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