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열풍 타고 급부상한 기업
반도체 판도가 뒤집혔다
국내 기업들에게는 위기와 기회

“반도체 왕좌의 게임에 예상치 못한 새 플레이어가 등장했다.” 반도체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가 1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엔비디아가 삼성전자와 인텔을 제치고 2024년 반도체 공급사 매출 1위에 올랐다.
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급부상한 엔비디아의 성장세는 업계의 예상을 뛰어넘으며 업계에 충격을 안겼다.
AI 열풍이 바꾼 반도체 세계 지도

가트너가 발표한 2024년 전 세계 반도체 매출은 총 6,559억 달러(약 944조 원)로, 전년 대비 21.0% 증가했다.
당초 가트너는 삼성전자가 인텔을 제치고 1위 자리를 탈환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최종 조사에서 ‘반도체 다크호스’ 엔비디아가 전년 대비 120.1%라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767억 달러(약 110조 원)의 매출로 정상에 올랐다.
이러한 성장의 원동력은 데이터센터 인공지능 워크로드에 필수적인 GPU 수요 급증이었다.
엔비디아의 반도체는 AI 학습과 추론에 필수적인 부품으로 자리매김하며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삼성전자는 전년 대비 60.8% 증가한 657억 달러(약 95조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2위 자리를 지켰다.
반도체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메모리 가격 반등이 삼성의 실적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AI 중심의 시장 재편 속에서 순위 변동은 불가피했다.
반면 인텔은 AI 열풍의 수혜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며 전년 대비 0.8%라는 미미한 성장에 그친 498억 달러(약 72조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인텔의 부진은 대규모 감원과 공장 투자 연기로 이어졌으며, 팻 겔싱어 CEO까지 4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위기 상황을 맞았다.

SK하이닉스, HBM 경쟁력으로 급부상
AI 시장의 성장은 메모리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 우위를 점한 SK하이닉스는 전년 대비 91.5% 성장한 442억 달러(약 64조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글로벌 4위로 올라섰다.
SK하이닉스의 성장률은 상위 10개 업체 중 엔비디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HBM은 AI 연산에 필수적인 고성능 메모리로, SK하이닉스의 기술력이 이 분야에서 빛을 발하며 글로벌 입지를 강화했다.

이는 AI 기술이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다만 이번 조사에서는 반도체 위탁 생산 전문 기업인 대만 TSMC가 제외되었다.
TSMC는 지난해 약 886억 달러(약 128조 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이를 포함하면 사실상 TSMC가 세계 반도체 매출 1위인 셈이다.
파운드리 분야의 강자인 TSMC의 성장 역시 AI 반도체 생산 수요 증가에 힘입은 것으로, AI가 반도체 산업 전반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관세 정책, 국내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도전

이러한 시장 재편 속에서 미국의 관세 정책은 국내 반도체 업계에 새로운 도전으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를 일시적으로 유예했지만, 여전히 업계의 불안정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명섭 iM증권 연구원은 7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이 반도체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매출이 4.3%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 연구원은 “한국 반도체 업체들의 매출 중 미국으로의 직접 수출 비중이 15~20% 수준이어서 직접적인 악영향은 1.3~1.7%에 불과하지만, 중국·대만·베트남 등지에서 한국 반도체를 탑재한 IT 제품이 미국으로 수출되는 간접적 영향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인 영향은 약 6%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 시장이 서버, PC, 스마트폰 시장에서 각각 56%, 25%, 10%의 비중을 차지하는 점을 고려할 때, 관세 정책은 글로벌 IT 산업 전반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산업의 판도는 AI라는 새로운 변수와 보호무역주의라는 오래된 장벽 사이에서 요동치고 있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이러한 변화 속에서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AI 시장에서의 기술적 우위 확보와 함께 글로벌 무역 환경 변화에 대한 탄력적인 대응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지형도가 바뀌는 이 중대한 변곡점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다음 행보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