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다 바쳤는데 “이렇게는 못 버텨요”…’발칵’ 뒤집힌 집주인들, 무슨 일?

2%대 금리로 시작한 영끌 대출
5년 후 두 배로 치솟은 이자
DSR 규제로 막힌 대환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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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형 주담대 금리 급증 / 출처: 뉴스1

“서울 아파트 살려면 86년 모아야 한대서 영끌로 샀는데, 이젠 이자 폭탄에 버티기 힘들어요.”

한국 부동산 시장의 냉혹한 현실이다. 지난해 발표된 민주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대 가구가 저축만으로 서울 아파트를 사려면 86년이 걸린다.

평균 연소득 4123만 원에서 각종 지출을 제외한 저축가능액은 고작 1389만 원. 서울 아파트 평균가 12억 원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 저금리를 타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로 겨우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이들이 이제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 부담에 신음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에게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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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형 주담대 금리 급증 / 출처: 뉴스1

‘영끌’ 5년 뒤 닥친 현실

서울 송파·서초에서 활동하는 한 시중은행 대출상담사는 최근 “이자가 너무 올랐다”는 고객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부동산 급등기였던 2020년 당시 2%대 금리로 혼합형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던 차주들이 5년 만에 금리 재산정 시점을 맞으며, 대출 금리가 4~5%대로 급등했기 때문이다.

혼합형 주택담보대출은 처음 5년간 고정금리가 적용되고 이후 변동금리로 바뀌는 상품이다. 은행들은 지금까지 완전 고정금리보다 이런 혼합형 상품 위주로 주택담보대출을 제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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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형 주담대 금리 급증 / 출처: 연합뉴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1~3월 혼합형 주담대 대출금리는 평균 2.44% 수준이었다.

반면 이달 23일 기준 5대 은행의 변동금리는 중간값이 5.02%에 이른다. 이는 단순 수치로만 보면 두 배 이상 오른 셈이다.

금리 상승은 곧바로 가계 부담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5억 원을 연 2.44% 금리로 빌렸을 경우 매달 상환액은 약 196만 원이지만, 금리가 5.02%까지 오르면 월 납입액은 약 269만 원으로, 70만 원 이상 늘어난다. 월급의 상당 부분이 이자 납부로 사라지는 것이다.

DSR 규제에 막힌 출구전략과 경매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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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형 주담대 금리 급증 / 출처: 뉴스1

이러한 상황에서 금리를 낮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대출 갈아타기'(대환 대출)마저 어려워졌다.

한 은행권 대출모집인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에 걸려 아예 갈아타기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며 “2020년에는 DTI(총부채상환비율) 기준만 적용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DTI와 DSR은 둘 다 차주가 얼마나 빚을 갚을 수 있는지 평가하는 지표이지만 계산법이 다르다.

DTI가 연소득 대비 주택담보대출 중심의 ‘이자 부담’만을 따진다면, DSR은 모든 대출의 ‘원금+이자’ 상환액을 계산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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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형 주담대 금리 급증 / 출처: 뉴스1

금융당국이 개별 차주에게 DSR 규제를 본격적으로 적용한 시점은 2021년 7월부터다.

결국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차주가 받을 수 있는 한도 자체가 줄어들었고, 이미 한도를 꽉 채워 대출을 받은 차주들은 갈아타기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어려움은 부동산 경매 시장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법원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은 채무자가 원금이나 이자를 3개월 이상 연체해 임의경매로 넘어간 부동산은 13만 9847건으로, 2023년 10만 5614건보다 32.4% 증가했다.

특히 아파트·오피스텔 등 집합건물 임의경매는 5만 5419건을 기록하며 전년 3만 9059건보다 41.8%나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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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형 주담대 금리 급증 / 출처: 연합뉴스

교보증권 리서치센터는 올해 약 50조 원에 달하는 주택담보대출이 변동금리로 전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4%대에 형성되어 있어, 2020년 2%대 고정금리로 대출받은 영끌족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의 경고와 조언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배경에는 2020년의 특수한 시장 환경이 있었다.

우병탁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팀장은 “1금융권을 넘어 2금융권, 사적 대출까지 동원한 ‘영끌’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던 시기였다”며 “특히 자산과 소득이 부족한 청년 세대들의 조급함이 영끌 현상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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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형 주담대 금리 급증 / 출처: 뉴스1

문제는 이후 금리가 급격히 상승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2022년 3월 이후 치솟은 물가를 잡기 위해 0%대 금리를 5.5%까지 빠르게 끌어올렸고, 한국은행도 같은 해 여섯 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올리며 대응했다.

우 팀장은 “금리 변화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소비자들은 ‘감당할 수 있는 대출’을 계산할 때 더 보수적으로,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에 더해 박동주 우리은행 부동산금융부 부부장은 “많은 분들이 대출을 선택할 때 당시 금리만을 기준으로 판단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전체 상환 구조와 조건”이라며 “현재 부담뿐만 아니라 미래의 재무 여건까지 고려해 여유 있는 상환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오는 7월부터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를 시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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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형 주담대 금리 급증 / 출처: 뉴스1

이에 현재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대기 수요가 많은 서울은 그나마 낫지만,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은 영끌족의 퇴로가 사실상 막힌 상황”이라며 걱정의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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