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이 올해(2026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0%로 상향 조정하며 긍정적 신호를 보냈지만, 그 이면에는 심각한 경고가 숨어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26일 기자간담회에서 “‘K자형 성장’ 등 부문별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고 직접 언급한 것이다. 성장률 수치는 개선됐지만, 그 혜택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은이 이날 발표한 ‘2월 경제전망’에 따르면, 올해 성장률 2.0% 가운데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IT 부문이 0.7%포인트(p)를 기여할 것으로 분석됐다. 전체 성장의 3분의 1 이상을 단일 부문이 견인하는 구조다. IT 부문 성장률은 약 1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반면, 비IT 부문은 1.4%에 그친다. 특히 내수의 핵심인 건설투자는 부동산 경기 위축과 PF 조정 여파로 2.1% 역성장할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11월 전망치(1.8%)보다 0.2%p 상향된 수치지만, 성장의 질적 측면에서는 오히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출 지표는 개선되는데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살아나지 않는 괴리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취업자 수 증가 규모는 당초 15만 명에서 14만 명으로 축소될 전망이다.
반도체는 잘나가는데 왜 일자리는 줄어드나
문제의 핵심은 고용 창출 효과의 차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장치 산업으로 제조업 중 취업유발계수가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며 “반도체 경기 호황이 한국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건설업은 취업유발 효과가 상당히 높은 산업이다. 주 실장은 “건설업 침체는 고용시장 전반의 부진으로 이어지고, 이는 가계 소득 감소와 내수 위축을 통해 한국 경제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IT 산업은 높은 생산성과 수익성을 기반으로 성장을 견인하지만, 그것이 일자리와 소득으로 연결되지 않으면서 ‘숫자상의 성장’에 그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한은의 분석에 따르면 2분기 이후에도 건설 등 비IT부문의 미약한 회복이 성장을 일부 제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창용 총재는 “IT 중심의 경제 성장이 이어지고 있고, 비IT 부문은 1.4%로 잠재성장률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라며 산업 간 격차를 거듭 강조했다.
내년은 더 어둡다…성장률 1.8%로 하향
‘IT 외끌이’ 성장의 취약성은 내년(2027년) 전망에서 더 분명해진다. 한은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9%에서 1.8%로 낮췄다. 건설투자 증가율은 1.9%에서 1.5%로 0.4%p 하향 조정됐고, 재화수출도 2.4%에서 2.3%로 0.1%p 낮아졌다. 올해 반도체 호황으로 일시적 개선이 있더라도,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다시 성장세가 둔화될 수 있다는 신호다.
더욱이 한국 경제가 잠재 수준을 완전히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 총재는 “지난해 성장률이 1.0%였고, 또 그전에도 성장률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GDP 갭은 올해는 작은 수준이지만 네거티브를 유지할 것 같고, 크로스(반전) 되는 시기는 2027년 중하반 이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성장률이 잠재 수준을 소폭 웃돌더라도 경제 규모가 정상 성장 경로를 회복하는 데는 1년 반 이상이 걸린다는 의미다.
“금리만으론 안 된다”…구조개혁 카드 꺼낸 한은
이창용 총재는 간담회에서 통화정책만으로는 산업 간 양극화를 해소하기 어렵다며 재정정책과 구조개혁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은 양극화를 우려하고, 이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해결할지 구조조정 시리즈를 통해 정책 제안도 하고 있다. 하지만 금리 정책만으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는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은은 이날 기준금리를 연 2.5%로 6연속 동결했다. 성장률 전망이 상향되면서 금리 인하의 명분이 약해진 상황에서, 양극화 문제는 중앙은행의 전통적 정책수단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적 과제임을 인정한 셈이다.
이 총재는 “통화 정책도 고려는 하지만 기본적인 재정 정책이나 구조 조정 정책 등을 통해 양극화에 대비를 해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2%대 성장률이라는 수치 이면에 감춰진 산업 간 격차와 고용 부진을 해소하지 못하면, 결국 지속 가능한 성장도 어렵다는 경고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