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여 년 전만 해도 100개 기업 중 14개가 고성장 궤도에 올랐다. 지금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한국 기업들의 성장 엔진이 꺼지고 있다는 경고가 국책연구기관에서 공식 제기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4일 ‘기업의 성공적 스케일업을 위한 정책 지원체계 재구축 방안’ 보고서를 발표하며, 국내 기업의 성장 역동성이 구조적으로 저하되고 있음을 수치로 확인했다.
스케일업 핵심 구간서 고성장 기업 ‘반토막’
KDI 분석에 따르면, 창업 후 본격 성장 단계인 업력 8~19년 구간에서 고성장 기업 비중이 급격히 줄었다. 연평균 매출 성장률 20% 이상을 기록한 고성장 기업의 비중은 2009~2011년 평균 14.4%에서 2020~2022년 7.8%로, 약 46% 감소했다.
같은 기간 역성장 기업(매출 성장률 0% 미만) 비중은 40%를 넘어섰다. 고성장 기업이 줄어드는 동시에, 뒷걸음치는 기업이 늘어나는 ‘이중 악화’가 확인된 셈이다.
전체 기업의 15%가 고용과 매출 절반 이상 책임
고성장 기업의 경제적 비중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들은 전체 기업의 10~15%에 불과하지만, 매출 증가의 약 50%, 고용 증가의 38%를 담당하는 핵심 성장 동력이다.
KDI는 산업 내 고성장 기업의 매출 비중이 1%포인트(p) 높아질 때마다 총생산성 성장률이 약 1%p 상승한다는 분석 결과도 제시했다. 고성장 기업의 감소가 단순한 기업 부진이 아닌, 국가 전체의 생산성 하락으로 직결된다는 의미다.
KDI 김민호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지난 15년간 고성장 기업의 비중이 크게 줄어왔다”며 “우리 기업의 역동성이 상당히 저하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R&D 편중 지원 한계…’원스톱 진단’ 체계로 전환해야
KDI는 고성장의 요인이 산업별로 다르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제조업에서는 AI 활용, 수출, 특허, 무형자산 투자가 주요 변수였고, 서비스업에서는 디자인권·상표권 등 브랜드 역량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김 연구위원은 “단순히 R&D 지원만 한다고 기업이 고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현행 지원 체계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기업이 각각의 지원사업을 직접 찾아다니는 현재 방식은 시간이 걸리고 효율이 낮다는 평가다.
KDI는 대안으로 ‘원스톱 진단 기반 정책 조합’ 체계를 제안했다. 단일 신청·진단을 통해 AI 활용, 브랜드 구축, 수출 채널 등 다층적 지원 수단을 동시에 배치하고, 민간 투자와 컨설팅까지 연계하는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스케일업 지원 정책의 성과 지표도 매출 증가, 고용 확대, 수출 확대 등 실질 결과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KDI는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지금은 성장하기 어려워진 시대”라며 “진짜 성장을 도와주는 사업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