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세 반대로 업계 혼란 가중
중국 제재 호재와 충돌
트럼프식 통상전략에 K-조선 ‘속앓이’

“러브콜을 보내더니 갑자기 등을 돌렸다”, “호재인가 싶다가도 금세 발목이 잡히니 전략을 세울 수가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정책이 국내 조선업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중국산 선박에 대한 제재 강화와 동맹국 함정 건조 허용 같은 기회가 잇따르는 가운데, 국제 해운 탄소세에 반대 입장을 내면서 친환경 전략을 추진하던 국내 업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조선·해운 전문지 트레이드윈즈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국제해사기구(IMO) 회의에서 해운업계 탄소세 부과 논의에 철수 의사를 밝혔다.
이어 과도한 국제환경협약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 통보하면서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는 ‘친환경 역풍’

탄소세는 현재 톤당 18~150달러 수준이 논의 중이며, 2027년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IMO 회원국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지만, 미국은 물론 중국,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등도 부정적 입장을 보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내 업계는 그간 IMO의 탄소 중립 로드맵에 맞춰 친환경 선박 기술과 수주에 투자해 왔다. 하지만 미국이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장기적 친환경 기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탄소세 무산, 조선업계 타격 불가피
탄소세 도입이 무산될 경우 한국 조선업계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국내 조선사들은 그동안 IMO의 환경 규제에 대응해 LNG 운반선 등 친환경 선박에 대한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를 집중해왔다.

현재 IMO는 선박을 탄소배출 효율 기준(AER)에 따라 A~E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최하위 E등급 선박은 1년 내 개선하지 못하면 운항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강력한 규제가 해운사들의 친환경 선박 교체 수요를 촉발해 한국 조선업계의 주요 수주 원동력이 되어왔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해운 탄소세가 톤당 100달러로 책정될 경우, 2025년부터 2050년까지 해운업계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최대 600억 달러(약 87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곧 해운사들이 친환경 선박으로 교체할 강력한 경제적 유인이 되어 조선업계에 대규모 발주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러나 미국의 불참 선언으로 탄소세 도입이 무산되면 해운사들은 노후 선박 교체 시기를 미룰 수 있어 한국 조선업계의 친환경 선박 수주가 크게 감소할 우려가 제기된다.
중국 제재 덕에 수주 기대감은 ‘여전’
다만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견제가 강화되면서 한국 조선업계에는 여전히 호재도 존재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산 선박에 1회 입항당 150만 달러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로 인해 중국 선박 수주가 꺼려진 일부 해외 선사들이 한국 조선소로 눈을 돌리고 있다.

또한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발의한 ‘해군 준비 태세 보장법’에 따라 동맹국이 미군 함정을 건조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이에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등 주요 조선사들은 1600조 원 규모의 미 함정 시장을 염두에 두고 미국 정부 및 관련 기업과 접촉을 확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통화한 직후, SNS를 통해 조선, LNG, 알래스카 가스관 합작, 방위비 문제까지 모두 포함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등 미국 내 에너지 안보 전략과도 맞물리는 만큼, 한국 조선업계는 기술 협력과 지분 투자 등을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행보는 K-조선 업계에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업계는 이미 도크가 포화된 상황에서 추가 수주에 따른 생산능력 확보와 인력 충원이 시급하다고 진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