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이 나면 금값이 오른다는 통념이 흔들리고 있다. 미·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국제유가 급등이 오히려 ‘고금리 장기화’ 공포를 키우며,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을 7거래일 연속 끌어내리고 있다.
3월 19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금 선물 종가는 온스당 4,605.7달러로 전장 대비 5.9% 급락했다. 금 현물 가격도 같은 날 오후 4.3% 내린 온스당 4,612.21달러에 거래됐으며, 은 선물 역시 8.2% 급락한 온스당 70.97달러를 기록했다.
국내 KRX 금시장에서도 금 시세는 그램당 231,420원으로 전장 대비 2.37% 하락, 5거래일 연속 내림세를 이어갔다. 국제 금값은 최근 일주일 사이에만 약 5% 빠진 것으로 집계됐다.
유가 급등이 금리 인하 기대를 꺾다
이번 금값 급락의 핵심 메커니즘은 ‘유가 → 인플레이션 → 금리 동결’로 이어지는 연쇄 반응이다. 미·이란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치솟자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졌고,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연내 금리 인하 시점을 사실상 열어두기 어렵게 됐다는 분석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전날 기준금리를 동결했고, 영국 잉글랜드은행(BOE)은 3월 19일 인플레이션 상승 우려를 명시하며 금리를 동결했다. 두 중앙은행의 잇따른 동결 결정은 글로벌 채권 금리를 끌어올렸고, 이자 수익이 없는 금의 상대적 매력을 더욱 약화시켰다.
지정학 리스크에도 금 대신 달러로 쏠린 자금
통상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되면 안전자산인 금이 강세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 흐름이다. 그러나 이번 국면에서는 달러화와 비트코인이 강세를 보이는 반면, 금은 오히려 조정을 받는 이례적인 양상이 나타났다.
투자플랫폼 AJ벨의 댄 코츠워스 시장 부문 대표는 투자자 노트에서 ”투자자들이 그동안 수익을 안겨줬던 자산을 처분하고 있거나, 미 달러화의 추가 강세에 반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금리 환경에서 이자 수익을 제공하는 달러화와 채권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구조적 흐름이 읽히는 대목이다.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 기반 흔들려…하방 위험 지속 경고
시장에서는 이번 급락이 단기 조정인지, 추세 전환의 신호인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구조적 약세 전환이 아닌 단기 조정으로 평가하는 반면, 중동 사태의 전개 방향에 따라 달러화의 안전자산 지위가 금을 압도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TD증권의 댄 갈리 원자재 전략가는 ”금은 지난 1년간 달러 가치 하락에 대비한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의 일환으로 기관 투자자들이 광범위하게 보유해 온 자산이지만, 이 같은 기반이 흔들리게 됐다”며 단기적으로 금값의 하방 위험이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지난해 이후 가격이 많이 오른 금 보유 비중을 줄이고 있다는 분석도 시장에서 함께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