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전기 저장할 ‘배터리 저수지’
정부 40조 규모 ESS 시장 열어
국내 배터리 3사, 중국과 정면승부

“이젠 전기도 저축하는 시대라네요.”
전기차 수요가 둔화되며 위기감이 커진 국내 배터리 업계에 새 기회가 찾아왔다.
정부가 2038년까지 약 40조 원이 투입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을 본격적으로 여는 것이다. ESS는 ‘전기의 저수지’로, 재생에너지 시대에 꼭 필요한 기반 시설로 떠오르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 왜 ESS가 필요할까
ESS는 남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햇볕이 강한 낮에 태양광 발전으로 전기가 남을 경우, 이를 ESS에 담아두었다가 해가 진 저녁에 꺼내 쓰는 식이다.

기존에는 LNG나 원자력이 수급을 조절했다면, 이제는 배터리도 전력망의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2일, 540메가와트(MW) 규모의 ESS를 전국에 설치하겠다고 밝히며 입찰 공고를 냈다. 이는 고성능 전기차 약 4만 대에 들어갈 만큼의 배터리 양이다.
이번 사업은 단순한 시범이 아니다. 전국 전력망에 ESS를 통합하는 첫 대규모 프로젝트로, 정부는 향후 이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40조 시장 앞에서 K-배터리는 지금
이런 흐름은 국내 배터리 기업들엔 반가운 기회다.
최근 전기차 시장이 정체되고,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영향으로 수익성도 흔들리는 상황에서 새로운 활로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미시간 공장에서 ESS용 배터리 양산을 앞당기기로 했다. SK온과 삼성SDI도 각각 미국 ESS 시장 확대를 추진 중이다.
다만, 문제는 ‘경쟁자’다. 중국의 CATL을 비롯한 업체들은 저렴하고 안전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 이미 세계 ESS 시장 점유율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기술력과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만큼, 한국 기업이 쉽게 뚫고 들어가긴 쉽지 않다.
정부도 이를 인식하고 있다. 이번 ESS 사업에서는 단순히 가격만으로 입찰자를 고르지 않는다.
배터리의 국내 생산 여부, 핵심 소재 조달 방식, 고용 효과, 폐배터리 재활용성 등 다양한 요소가 평가에 포함된다. 즉, 국내 산업에 기여하는 기업에게 가점을 주겠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는 발전량이 들쑥날쑥해 ESS 없이는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국산 배터리를 ESS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아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새로운 40조 시장이 단순한 일회성 사업이 되지 않기 위해선, 기술 경쟁력과 산업 전략이 맞물려야 한다.
전기를 저장하는 ‘배터리 저수지’가 K-배터리의 두 번째 전성기를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가짜기사만 없으면 대한민국 배터리 승승장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