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다 문닫아 “갈 곳이 없다” 했는데… 정부 특단 대책에 고령층 ‘활짝’

디지털 소외 고령층에 금융 희소식
동네 우체국, 은행 역할 맡는다
정부의 새 금융접근성 향상 정책

“10년 넘게 다니던 은행이 문 닫는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지점은 버스 타고 30분은 가야 하는데…”

강원도 홍천에 사는 김 모(73)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스마트폰으로 은행 업무를 보라는 자녀들의 권유도 있었지만, 작은 화면의 글씨는 잘 보이지 않고 복잡한 인증 절차는 더욱 난감했다.

은행 점포가 줄줄이 사라지면서 김 씨처럼 금융 사각지대에 놓인 수많은 고령층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은행이 떠난 자리를 동네 우체국과 다양한 금융기관들이 채워 서비스 공백을 메우고 금융 취약계층을 지원할 전망이다.

우체국이 은행 업무를 대신한다

27일 금융위원회는 예·적금, 대출, 이체 등의 은행 업무를 제3자가 대신 수행할 수 있는 ‘은행대리업’ 제도를 올해 안에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제도는 디지털 전환으로 은행 영업점 폐쇄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금융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다.

은행대리업은 은행이나 은행이 최대주주인 법인이 수행할 수 있으며, 여기에 더해 우체국, 상호금융, 저축은행 등 지역 기반 기관의 진입도 허용된다.

특히 전국에 2,500개 지점을 보유한 우체국의 참여는 금융 소외지역 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은행대리업 제도가 도입될 경우 농촌에 거주하는 노인들은 앞으로 버스를 타고 멀리 있는 시내 은행을 방문하는 대신, 집 근처 우체국에서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은행대리업자는 고객 상담, 거래 신청서 접수, 계약 체결 등 ‘대면 업무’만 수행하며, 대출 심사·승인 등 은행의 건전성과 직결된 업무는 여전히 은행이 직접 처리한다.

사라지는 은행들, 소외되는 지역 주민들

이러한 대책이 시급한 이유는 은행 점포가 빠르게 감소하며 금융 취약계층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국내 은행 점포 수는 총 5,849곳으로, 1년 전보다 53곳이나 줄었다.

은행 점포는 2012년 7,835곳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최근 6년간 단 한 차례도 증가하지 않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요즘은 예·적금 가입이나 대출 신청의 70~80%가 비대면으로 이루어진다”며 “비용 효율화를 위해 점포 축소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과 농촌 주민들은 금융 서비스 이용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은행 점포 이용을 위한 최소 이동 거리가 서울, 부산, 대전에서는 1km 이내지만, 강원, 전남, 경북 등에서는 최대 27km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더 나아가는 금융 접근성 향상 대책

금융위는 은행대리업을 제도화하기 위해 ‘은행법’ 개정을 추진하는 한편, 올해 안으로 혁신금융서비스를 활용한 시범 운영을 여수신 취급 금융회사와 우체국을 중심으로 먼저 시작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편의점이나 대형마트 등 비금융 일반기업의 은행대리업 허용 여부는 추후 필요시 검토할 계획”이라며 “IT기업이나 핀테크 업체와의 협업도 금융회사 업무위탁 제도 내에서 적극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또한 은행 공동 ATM 확대와 편의점 내 입·출금 서비스 활성화도 추진한다.

현재 일부 편의점에서는 카드 기반 소액 출금과 잔돈 입금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물품 구매 없이는 출금이 불가능하고 실물 카드 중심이라는 한계가 있다.

금융당국은 무결제 출금 허용, 입·출금 한도 상향, 모바일 현금카드 연계를 통해 더 편리한 현금 거래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