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밟아도 무용지물?”… 국산차 ‘이 핵심 기능’ 진실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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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제어장치 사양서 공개
2022년 12월 급발진 의심 사고 당시 모습 / 강릉소방서

2022년 12월, 강원 강릉에서 당시 12세였던 이도현 군이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숨진 지 3년 7개월이 지났다. 유족이 제조사 KG모빌리티(KGM·옛 쌍용자동차)를 상대로 제기한 약 9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민사소송 항소심에서, ‘자동차의 두뇌’에 해당하는 전자제어장치(ECU) 사양서 공개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급발진 vs 오조작’ 공방을 넘어, 고도로 전자화된 현대 자동차 결함 소송에서 소비자가 제조사의 설계 정보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지를 가르는 시험대가 됐다. 오는 8월 13일 서울고법 춘천재판부(민사2부, 심영진 부장판사)의 변론준비기일이 그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판도라의 상자, 이미 열렸다…2페이지가 불러온 전면전

이번 공방의 발단은 KGM 스스로가 제공한 단서였다. KGM은 2026년 4월 항소심 준비서면에서 “브레이크페달은 단순한 전기적 스위치로 ON/OFF 상태만을 ECU에 전달하며, 내부적으로 복잡한 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단 2페이지 분량의 ECU 사양서 일부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유족 측은 즉각 ECU 사양서 전체 제출을 요구하고 나섰다. 민사소송법상 ‘소송에서 인용한 문서를 보유하고 있을 때는 제출을 거부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법적 근거다. KGM이 이후 문서 제출을 철회하려 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족 측 소송대리인 하종선 변호사(법률사무소 나루)는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리기 시작했다”며 전면 공개를 촉구했다.

‘단순 스위치’인가, ‘복잡한 로직’인가…BOS 무력화 논쟁

쟁점의 핵심에는 브레이크 오버라이드 시스템(BOS)이 있다. BOS는 브레이크페달과 가속페달을 동시에 밟았을 때 브레이크 신호에 우선권을 부여해 가속을 차단하는 안전장치다. 유족 측은 “ECU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 상황에서는 BO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KGM은 “사고 당시 운전자(이도현 군의 할머니)가 브레이크페달을 밟지 않고 가속페달만 밟았기 때문에 BOS가 있어도 제동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반박한다. 하 변호사는 “ECU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운전자가 의도하지 않은 위험 토크(엔진 출력)가 발생할 수 있는지, 페달 입력값 해석과 가속 명령 결정 과정에서 오류가 생길 수 있는지를 사양서로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ECU가 브레이크 신호를 어떻게 처리하는가’라는 기술적 물음이 사건의 승패를 가를 수 있다.

영업비밀 대 진실 발견…국내 자동차 소송의 구조적 한계

ECU 사양서에는 가속·제동 신호 처리 로직, 엔진 토크 명령 생성 방식, ECU와 BCM(차체제어모듈) 간 신호 전달 구조, BOS 작동 방식, EDR(사고기록장치) 신호 구조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서는 제조사의 영업비밀로 취급돼 1심 재판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조차 열람하지 못했다. 유족 측은 국과수 감정이 직접적인 실험·데이터 검증 없이 추론에 의존했다고 비판하며, 이를 “비과학적 1심 판결의 핵심 문제”로 지목한다.

하 변호사는 “제조사의 영업비밀은 보호돼야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사고 원인과 직접 관련된 설계 정보까지 검증 대상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공개 제출, 법원의 선별 심사, 핵심 부분 제한 열람, 복제·반출 통제에 비밀 유지 의무를 결합하면 영업비밀 보호와 진실 발견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절충안도 제시했다. 이는 해외 일부 국가에서 이미 시행 중인 비공개(in camera) 심리 방식과 유사한 접근이다.

이도현 군 아버지 이상훈 씨는 “제조물 책임법상 소비자에게 입증 책임이 있어 힘든 과정을 겪고 있다”며 “소송의 승패를 떠나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갈 기회가 열렸다”고 말했다.

만약 8월 13일 심리에서 재판부가 ECU 사양서 전체 공개를 명령한다면, 향후 자동차 결함 소송에서 전자제어 설계자료 공개를 요구하는 새로운 판례가 형성될 수 있다. 반대로 공개가 전면 거부될 경우, 첨단 전자장치로 가득 찬 현대 자동차 결함 소송에서 소비자의 정보 비대칭 문제는 제도적으로 고착될 위험이 있다. 이번 재판은 자동차 산업 전체의 투명성 기준을 시험하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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