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직후 전 세계 자동차 팬들로부터 “페라리답지 않다”는 혹평을 받은 페라리의 첫 순수 전기차 ‘루체(Luce)’가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만들어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루체는 올해 5월 25일 출시 후 단 두 달 만인 7월 초에 연간 판매 목표인 ‘500대 미만’을 사실상 전량 소화했다.
디자인 논란과 주가 급락이라는 이중 타격 속에서도 중국과 실리콘밸리의 신흥 부유층이 예약을 쓸어담으며 ‘혹평 속 완판’이라는 역설적 성과를 만들어냈다.
논란의 중심에 선 루체, 디자인 쇼크와 주가 폭락
루체의 외관 설계는 애플 전 최고디자인책임자(CDO) 조니 아이브와 마크 뉴슨이 공동 설립한 디자인 스튜디오 ‘러브프롬(LoveFrom)’이 맡았다. 결과물은 페라리 전통의 저상 2도어 스포츠카 실루엣 대신, 4도어 패스트백 세단 형태의 ‘글래스 하우스’ 디자인이었다.
공개 직후 반응은 싸늘했다. 일부에서는 “일반 대중차와 닮았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전 페라리 회장 루카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는 “프랜싱 호스 엠블럼을 떼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자들도 등을 돌렸다. 신차 공개 직후 밀라노 증시에서 페라리 주가는 하루 만에 8% 이상 급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랜 기간 마케팅과 영업을 총괄해온 엔리코 갈리에라 최고마케팅·영업책임자까지 회사를 떠났다. 페라리 측은 이 인사 변경이 루체 논란과 무관하며 출시 전부터 예정된 조직 재편이라고 설명했다.
혹평 뚫고 완판…중국·실리콘밸리가 수요 견인
그러나 시장은 비판론자들의 예상을 빗나갔다. 루체의 중국 배정 물량 88대는 현지 출시 직후 전량 소진됐다. 중국 출시 가격은 398만8,000위안(약 58만6,000달러)으로 책정됐다. 미국에서는 실리콘밸리 테크 창업자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졌고, 로빈후드 공동창업자가 루체를 ‘패밀리카’로 구매하겠다고 언급한 사례까지 회자됐다.
독립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분석가 스콧 셔우드는 “페라리의 마케팅과 고객 분석 역량은 경쟁사들과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타깃팅의 정교함을 높이 평가했다. 페라리는 딜러들에게 “기존 내연기관 수집가들에게 전기차 구매를 강요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 컬렉터층을 지키면서 완전히 새로운 EV 고객층을 별도로 공략하는 투트랙 전략이다.
1,036마력·530km 주행거리…’헤일로 카’로서의 기술력
루체의 제원은 그 자체로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다. 바퀴당 하나씩, 총 4개의 전기모터로 구동되는 사륜구동 시스템이 최고 출력 약 1,036마력(772kW), 최대 토크 990Nm를 발휘한다. 0-100km/h 가속은 2.5초, 최고 속도는 310km/h에 달한다.
122kWh 배터리와 800V 고전압 아키텍처를 탑재했으며, DC 급속 충전은 최대 350kW까지 지원해 10%에서 80%까지 약 23~25분이면 충전이 완료된다. 유럽 기준 예상 주행거리는 약 530km다. 공기저항계수(Cd) 0.254의 패스트백 차체가 고속 효율을 뒷받침한다. 유럽 시작 가격은 55만 유로(약 9억 원대)이며, 옵션과 커스터마이징을 감안하면 실제 평균 판매가가 70만 유로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페라리는 루체를 2030년까지 누적 2,500대, 연평균 약 600대 판매한다는 장기 목표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페라리 연간 전체 판매량의 약 5% 수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