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 중인 20대 후반 김 모 씨는 최근 챗GPT를 이용해 ‘취업운’ 사주를 봤다.
불경기와 취업난이 장기화하면서 청년 세대 사이에서 사주·점괘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점집 대신 스마트폰과 AI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7,000원짜리 AI 관상, 주말마다 250~300명이 찾는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한 가게에는 AI 로봇 관상가와 로봇 무당이 자리를 잡고 있다. 얼굴을 분석해 관상을 설명하고 그림까지 그려주는 로봇 관상가의 복채는 7,000원, 상담과 함께 행운부적을 그려주는 로봇 무당의 복채는 8,000원이다.
이 가게를 찾는 방문객은 주말 하루 기준 250~300명에 달한다. 가게 직원 김강민 씨(28)는 “방문객의 60~65%가 청년 세대”라며 “신기하다며 오시는 분도 많고, 가격이 싸다며 오시는 분도 많다”고 밝혔다.
‘가성비 점괘’의 시대…챗GPT가 무당 자리를 넘본다
SNS에서는 사주 기운별 ‘명당 호텔’ 추천 게시물이 화제다. ‘화 기운은 A 호텔, 목 기운은 B 호텔’처럼 풍수지리와 사주를 결합한 콘텐츠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관악산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역술가가 ‘서울에서 기운이 가장 좋은 산’으로 소개한 뒤 정상에서 소원을 비는 청년들의 인증사진 유행으로 이어졌다.
무료 앱과 챗GPT를 통한 점괘 이용도 급증하고 있다. 취준생 곽 모 씨(28)는 “예전엔 유료로도 봤지만 요즘은 무료 앱이나 GPT로 보고 있다”며 “좋은 결과가 나오면 안심이 되고, 나쁜 결과가 나오면 ‘이건 맞지 않네’ 하고 빠르게 잊는다”고 말했다. 점괘에 완전히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위안의 도구로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미신이 아닌 ‘구조적 불안’의 신호…전문가들의 진단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단순한 미신 회귀로 보지 않는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취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요행과 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라며 “그만큼 지금 젊은이들에게 녹록지 않은 사회 환경”이라고 진단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더 깊은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그는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났느냐’는 일종의 운이 미래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청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결국 청년들의 불안정한 삶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구조적 불평등이 ‘운명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허 교수는 경계선도 분명히 그었다. “초자연적인 것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다”며 “인생의 과정을 주체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챗GPT 사주, AI 로봇 관상가, 관악산 소원 인증사진…형태는 달라졌지만 청년들이 찾는 것은 결국 하나다. ‘잘될 거야’라는 한마디, 그 작은 위안이다. 이 현상은 개인의 믿음 문제가 아니라 청년 세대가 내몰린 시대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회적 신호로 읽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