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자동차 수출 호조라는 호재가 무색해졌다. 중동발 지정학적 충격이 한국 기업들의 체감 경기를 빠르게 잠식하면서, 4월 경기 전망이 비상계엄 사태 직후인 지난해 1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추락했다.
한국은행이 27일 발표한 3월 기업경기조사 결과에 따르면, 3월 전산업 기업심리지수(CBSI)는 전월 대비 0.1포인트(p) 하락한 94.1을 기록했다. 4월 전산업 CBSI 전망치는 4.5p 급락한 93.1로 집계됐으며, 이는 계엄 직후인 2025년 1월(-7.2p)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CBSI는 기준선 100을 웃돌면 낙관적, 밑돌면 비관적 심리를 의미한다. 현재 지수는 이미 기준선을 상당 폭 하회하고 있는 상태다.
이란 전쟁이 당긴 방아쇠…비제조업 직격탄
3월 지수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이란 전쟁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과 물류 차질이 지목된다. 한국은행 이흥후 경제심리조사팀장은 “반도체를 비롯한 IT 부문 수출 호조, 조업 일수 증가 등에도 이란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과 불확실성 확대로 지수가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업종별 타격은 비제조업에 집중됐다. 3월 비제조업 CBSI는 자금 사정(-0.5p)·업황(-0.4p) 악화를 중심으로 전월 대비 0.2p 하락한 92.0을 기록했다. 이 팀장은 “이란 전쟁으로 물류에 차질이 빚어져 운수창고업 등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부연했다. 반면 제조업 CBSI는 97.1로 전월과 같았다.
수출기업 낙관심, 한 달 만에 사라졌다
더욱 눈에 띄는 대목은 수출기업 심리의 급반전이다. 2월 3월 전망치에서 102.2를 기록하며 2022년 7월 이후 처음으로 기준선 100을 넘어섰던 수출기업 CBSI 전망치가, 4월 들어 단 한 달 만에 98.5로 주저앉았다. 낙폭은 3.7p로, 2023년 10월(-6.0p) 이후 가장 컸다.
시장에서는 이를 반도체·자동차 등 주력 수출품에 대한 국제 수요 둔화 우려가 본격화된 신호로 분석한다. 한국은행 관계자가 “반도체 수출 덕에 제조업 하향 조정이 비교적 적었다”고 언급한 것은, 역설적으로 특정 품목에 과도하게 의존한 경기 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낸다는 해석도 나온다.
소비자까지 흔들렸다…경제심리지수도 급락
기업 심리 악화는 소비자 심리까지 전이되는 양상이다.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소비자동향지수(CSI)를 반영한 3월 경제심리지수(ESI)는 전월 대비 4.8p 하락한 94.0을 기록했다. 이 역시 비상계엄 직후인 2024년 12월(-9.8p)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소비자심리지수(CCSI)도 3월 107.0으로 전월 대비 5.1p 떨어졌다. 특히 CCSI 구성 지수 중 ‘향후경기전망’이 12p 급락하며 현재보다 미래를 더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흐름이 두드러진다. 한은 관계자들은 이 같은 수치를 두고 “중동 분쟁 여파가 물가·공급망·금융시장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