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서 한국의 원유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은 전체 원유 수입의 약 70%가 이 해협을 통과하는 구조여서, 봉쇄가 이어질수록 수급 불안이 빠르게 현실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19일 원유 자원안보 위기경보를 기존 ‘관심’에서 ‘주의’로 한 단계 격상하고 총력 대응에 나섰다. 호르무즈 봉쇄 전 마지막으로 해협을 통과한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은 20일 새벽 국내에 입항하며, 24일에는 대체 항로를 이용한 유조선이 추가로 들어올 예정이다.
UAE 2400만 배럴·IEA 공조로 ‘4월 고비’ 넘기나
정부가 확보한 긴급 원유 물량은 크게 두 축이다. 이재명 대통령 특사로 UAE를 방문한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18일 UAE로부터 1800만 배럴을 긴급 도입한다고 밝혔다. 앞서 3월 6일 확보한 600만 배럴을 합산하면 UAE로부터 총 2400만 배럴을 들여오게 된다.
여기에 국제에너지기구(IEA)와 공조해 방출하기로 한 비축유 2246만 배럴도 4월 위기의 완충 역할을 할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확보된 UAE 물량과 비축유를 합치면 우리 경제가 약 22~25일가량을 추가로 버틸 수 있는 규모”라며 “차량 5부제 등 강력한 수요 관리 대책이 병행된다면 4월 말까지는 수급 유지가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축유 실제 가용 기간은 ’68일’… 수치의 함정
정부와 민간이 보유한 비축유는 현재 약 1억9000만 배럴에 달한다. 정부는 이를 208일분으로 설명하지만, 이는 IEA 기준의 일평균 순수입량을 적용한 수치다.
국내 실제 하루 석유 소비량인 280만 배럴을 기준으로 적용하면 가용 기간은 약 68일에 불과하다. IEA 권장 기준인 90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에너지 업계에서는 비축유의 실질적 여력에 대한 냉정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체 공급선 확보 ‘사활’… 비용·불확실성 동시에 상승
정유사들은 대체 공급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대체선은 단기 계약이어서 기존 중동산 원유보다 도입 단가가 높고, 운송 거리 증가로 물류비까지 동반 상승하고 있다.
UAE 물량의 선적지인 푸자이라 항구 역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항구는 호르무즈 해협 외부에 위치하지만 여전히 이란의 공격권 안에 있어, 실제 선적 및 국내 입항 시점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이 불안 요인으로 남아 있다. 정부는 러시아산 원유·나프타 수입 가능성도 기업들과 함께 타진하고 있으며,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러 제재를 일시 완화한 것과 맞물린 흐름이다.
35년 만의 차량 5부제… 에너지 공급망 구조 개편 ‘시험대’
수요 관리 차원에서는 차량 5부제 또는 10부제 시행이 검토되고 있다. 민간 차량까지 의무 적용된다면 1991년 걸프전 이후 35년 만의 조치가 된다. 가스의 경우 국내 저장 재고가 법정 의무 수준을 상회하고 동절기가 지나 수요 비수기에 접어든 만큼 위기경보는 ‘관심’ 단계로 유지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중동 편중 원유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고 본다. 유승훈 교수는 “중동 외 지역의 다양한 원유를 상시 도입하려면 중질유 중심의 국내 정유사 설비를 경질유 처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며 “호주 정부가 에너지 안보를 위해 정유 플랜트에 직접 재정을 지원했듯, 우리 정부도 정유사의 설비 전환에 과감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